서대문50플러스센터 ‘코끼리 이웃작가’

비영리커뮤니티 코끼리 이웃작가 모임 박종국(맨 왼쪽부터), 신윤상, 양미연, 전성자, 방수영, 이영구씨. 자서전을 하나씩 품에 든 이들은 하나 같이 “글쓰기는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이순(耳順)이 훌쩍 넘어 글과 그림을 배워 책을 쓴 사람들이 있다. ‘순천 소녀시대’로 불리는 20여명의 할머니들로 2016년부터 순천시 평생학습관에서 한글을, 순천시립 그림책 도서관에서 그림을 배워 그림일기를 썼다. 이 일기가 묶여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 발행)가 2월 세상에 나왔다. 이들이 쓴 글과 그림이 이달 22일까지 미국 뉴욕 미컬슨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등 기적을 만들고 있다.

지난 달 서울 서대문50플러스센터가 ‘제2의 순천 할머니’를 모집했다. 13일부터 열리는 ‘서대문 BOOK살롱’ 강좌를 통해서다. 60세 이상 15명을 선발, 2개월 과정 수료 후 개인 자서전을 내고 7월 출판기념회도 갖는다. 단, 기간이 짧은 만큼 순천 평생학습관처럼 한글 교육은 빠진다.

강사진은 독특하다.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방수영(29)씨와 지난해 방씨의 자서전 쓰기 강좌 ‘서대문 이웃작가-가만히 내 이름을 불러보다’를 듣고 비영리커뮤니티까지 꾸린 박종국(55) 신윤상(52) 양미연(56) 전성자(60) 이영구(49)씨다. 2일 서대문50플러스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어르신들이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하신다. 맞춤법 틀릴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저희가 다 도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만든 계기는 지난해 자서전의 치유 효과를 몸소 체험하면서다. 양미연씨는 “전업주부였다가 외환위기를 겪고 김밥집을 열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입고 마음을 문을 닫았었다. ‘빨리’란 말을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는데, 작년 자서전 쓰기를 통해 신기할 정도로 치유됐다. 주변에 자서전 쓰기를 적극 권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로 관련 실용서를 썼던 이영구씨는 “글쓰기에 대한 로망”으로 자서전 쓰기 수업을 신청했다가 치유를 경험했다. “수업 중 꿈, 신, 화처럼 중의적으로 쓰이는 한 글자 어휘를 주제어로 던져주고 관련 개인사를 써서 발표했어요. 처음에는 당혹스럽지만 그렇게 쓴 글을 읽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각자의 아픔이 치유됐죠.”(이영구)

“내 이름의 책을 내겠다는 버킷리스트를 갖고 있었다”는 박종국씨는 퇴직 후 작년 수업을 듣게 되면서 꿈을 이뤘다. 박씨는 “한국 사람들이 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치는데, 이 모임은 저의 있는 그대로 모습만 보여줄 수 있어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지난해 자서전 쓰기 강좌의 학습지원을 맡았던 전성자씨는 “본인의 문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그 문제를 개선하는 공동체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강좌 종료 후 비영리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이들은 지난 해 상반기 수업 후 각자의 에세이를 모아 앤솔로지 ‘가만히 내 이름을 불러보다’를 독립출판물로 발행했고, 하반기엔 각자 한 권씩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프로그램 수료 후 자발적으로 비영리커뮤니티 ‘코끼리 이웃작가’를 꾸려 서대문구 주민들의 구술사도 함께 기록했다. 신윤상 코끼리 이웃작가 대표는 “(제 자서전을 내고 나니) 저희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 글쓰기 어려운 분들의 이야기도 책으로 만들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서대문구 구술사 작업을 하면서 어르신들의 자서전이 지역 역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서대문 book 살롱’ 수업은 지난해와 비슷한 방식으로 꾸려진다. 나이, 뿌리, 학교, 희망 등 두 글자 주제어를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발표한다. 방수영 강사는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면서 어르신들의 과거 경험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책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누리게 해드릴 것”이라고 전했다.

“자기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데 글쓰기가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떤 일을 할지 미래에 대한 재설계를 할 수 있죠. 자서전을 내는 것도 좋지만, 당장 어렵다면 일기나 나에게 주는 칭찬 같은 글을 쓰는 것도 좋아요. 꾸준히 쓰다 보면 아픔이 치유됩니다.”(양미연)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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