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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남성, 기자, 권력

입력
2019.05.04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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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공론장에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것은 이미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중에 뉴스 혹은 이슈를 생산하거나 선별하고, 무엇을 내보낼지 결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선택이 당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이들에게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도 이들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 때문이다.

사람들은 뉴스를 생산하는 이들이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현명한 판단력으로 담론을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종종 자신이 지닌 권력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남용하거나, 불법 행위를 유희 거리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 화제가 된 남성 연예인과 남성 기자 단체 채팅방 사건이 그 예이다.

폭행사건에서 시작한 클럽 버닝썬 문제는 어느덧 남성 연예인과 사업가들의 불법촬영물 공유와 강간 문제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몇몇 남성 연예인의 일탈로 축소하기에는 거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 정치경제 권력의 담합이 어떻게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광 산업, 마약 산업, 성매매 산업 등과 관계를 맺으며 거대한 남성연대경제시스템을 구축해 왔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을 통해 기자들 또한 익명의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서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고, 성매매 후기를 공유한 정황이 포착됐다. 문학방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는 적지 않은 수의 남성 기자들이 있었다.

남성 연예인과 남성 기자들의 단체 채팅방은 직업이 다르다는 점 외에는 별 차이가 없다. 남성 연예인들은 서로를 사업 파트너이자 동료 연예인이자 유명한 남성으로서 여성을 희롱하고 대상화하고 불법 촬영물을 찍고 공유하며, 서로의 비밀에 침묵하고 그들의 경제적 연대를 견고하게 다져갔다. 남성 기자들 또한 채팅방에서 불법 촬영물만 공유하지는 않았다. 비밀 커뮤니티에서 그 방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를 공유하며, 관계를 유지해 갔다. 권력과 인기의 중심에는 남성들의 연대가 있고, 여성, 성매매ㆍ성폭력, 사이버 폭력 및 불법 촬영물 공유를 매개로 그 연대는 깊어진다는 점이 닮았다.

한편, 자신들의 불법 행위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반성이나 성찰 대신 자신은 모르는 일이며, 그 일과 상관없다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기자들은 기사를 생산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을 제외한 나머지 언론에서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기거나 아예 기사를 쓰지 않는다. 대신 남성 연예인들에 대한 기사만 쓴다. 남성 연예인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서 정작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셈이다.

침묵은 답이 아니다. 반성과 성찰 없이 언론계는 변하지 않는다. 언론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밀이 지켜질 거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이미, 사회가 언론보다 더 빨리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사회가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남성 기자들이 채팅방에서 조롱했던 ‘미투 운동’이 일어났고,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일어났다. 문화계, 예술계, 학계에서도 성폭력 사건으로 뒤집혔다. 언론계는 이상하리만큼 잠잠했지만, 언론계가 투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 얼마나 많은 기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유사) 성폭력을 행사했는지 본인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관례로 행해졌던 모든 행동에 대해 내부적 비판이 필요하다. 성인지 감수성이 없다면 배워야 한다. 언론이 사회적 신뢰를 잃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세월호를 통해서 학습했다. 내부적 비판과 변화가 없다면 아무도 남성 기자를, 언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은 이미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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