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 이후 응급실에 들어올 수 있는 보호자 수가 1명으로 제한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보호자 통제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내달리기 좋아하는 아이. 필자의 일곱 살 아들이다. 한마디로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한두 번은 응급실 신세를 진다. 최근에도 응급실 신세를 졌다. 아이가 집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벽에 부딪쳐 눈이 퉁퉁 붓는 사고가 발생했다. 밤 10시라 동네 외래를 갈 수도 없어 아이를 부여잡고 인근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뛰어갔다.

벽에 부딪친 왼쪽 눈은 까맣고 빨갛게 변해 속이 탔지만 응급실 기준으로 봤을 때 아이의 상처는 중증은 아니었다. 대기실에서 가장 많이들은 소리가 보호자 1인 이외에는 응급실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이었다. 응급실 내부에는 내원 시 발급받은 명찰을 소지한 보호자 1인만 있을 수 있는데 규칙을 위반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러고 보니 응급실에는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부 환자 곁에는 너 다섯의 멀쩡한(?) 일행이 주변에 머물고 있었다. 이들이 아니면 응급실이 그리 복잡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병원 측의 퇴장 요구에도 굴하지 않고 환자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이들의 사정도 딱했다.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은 당연히 심적으로도 약해질 것이고, 가족이나 친척, 지인이 그런 처지에 있을 때 직접 대면해서 안부를 살피는 문화를 탓하기도 어렵다. 그러다보니 환자를 보러 온 사람들은 “뭘 밤에 달려왔어” “그래도 안 올 수 있나요”라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환자를 직접 만나 얼굴을 보여주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손잡고 위로를 전하며 쾌유를 빌어야 사람 노릇을 했다고 여기는 병문안 문화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사태를 겪었는데도 아직 나아진 것 같진 않았다. 환자와 가족, 의료인과 방문객이 섞이면 섞일수록 감염병에 노출될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문안도장’을 찍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우리네 병문안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감한다. 하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내로남불’처럼 나는 늘 예외가 돼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드디어 순서가 돼 진료를 받은 결과 아이는 큰 문제가 없었다. 잠이 든 아이를 업고 응급실에서 나오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어른 네댓 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기어코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기에 이들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 안전요원들과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다.

서양인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우리네정(情)은지켜야 할 아름답고 따뜻한 문화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응급실에서 얼굴도장을 찍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1분 1초가 급박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 왔어요”가 아니라 치료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눈도장을 찍는 것은 환자가 건강을 회복한 후 해도 늦지 않다.

유현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서강헬스커뮤니케이션센터장)

유현재 서강대 교수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