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내려와서도 무대에서의 삶이 이어지곤 한다. 런웨이를 누비던 워킹이 자신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전국의 마켓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은 워킹맘들의 손을 잡기 위한 도약이다. 또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 조심스레 뽀얀 눈밭을 밟는 건 또 다시 누군가를 꽃피우기 위한, 그야말로 사랑이다. ‘아이들의 행복이 미래’란 캐치프레이즈로 4~6일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기흥점에서 열리는 자선 바자회를 앞두고 눈코뜰 새없이 바쁜 사단법인 미스코리아 녹원회(이하 녹원회) 이정민(1998년 ‘미’) 부회장과 함께 했다.
HI : 오랜 모델 생활덕분인지, 후배들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체형을 유지하시는 것 같아요.
이정민(이하 이) : 98년 대회 이후로 15년 동안 모델 생활을 했었어요. 이상봉 선생님 쇼부터 구찌루이비통 등 웬만한 유명 브랜드의 무대는 거의 서 본 것 같네요. 사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도 매년 패션위크 시즌이 되면 마음이 아득하고 설레요. 하지만 지금은 녹원회 부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더욱 큰 비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HI : 평소 자기관리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이 : 바로 집 앞에 ‘바우길’이라는 솔밭길이 있어요. 바우(Bau)는 아픈 사람을 손으로 한 번만 어루만져줘도 병을 낫게 해주는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건강의 여신이에요. 저도 주변 사람들도 바우처럼 모두가 건강하고 건강하길 기도하며, 아침마다 생명력 넘치는 파도 소리와 피톤치드 가득한 솔밭길을 걷는 게 저만의 건강관리 노하우랍니다.
HI : 자타공인 ‘강릉댁’으로 지역 자랑 좀 해주세요.
이 : 강릉은 지난해 평창올림픽 이후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어요. 남편과 함께 성화 봉송을 했었지만, 그것 때문에 강릉 자랑을 하는 건 아니고요.(웃음). 설악산 태백산 등 한국의 대표적인 산들과 동해가 있는데, 계절마다 모습이 다 달라요. 또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겨울 스포츠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도 잘 조성됐답니다. 또 DMZ와 민통선 그리고 전망대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만이 가질 수 있는 관광자원도 가지고 있어, 이제는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HI : 가끔 서울 생활이 그립진 않으세요.
이 : 2009년에 남편을 만나 1년 연애후 바로 이곳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어요. 15년간 화려한 무대 위에서의 생활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강릉에 오고 싶었는데, 살수록 이곳이 더 좋아지네요. 그리고 이제는 저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모두 자연과 겨울스포츠를 사랑하고,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곳이기 때문에 쭉 강릉에서 지낼 것 같아요.
HI : 결혼 당시 스타와 스포츠가족의 결합으로 이슈였던게 생각나네요.
이 : 말 그대로 알파인 스키 가족이에요. 아주버님이 이기홍 전 국가대표 감독이시고, 남편은 전 국가대표 스키 선수와 코치를 역임했던 이기현 코치입니다. 또 현재 BSC 알파인 스키팀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 아이들은 연년생 남매인데, 열 살 된 딸 안빈이가 여덟 살 때부터 아빠와 같은 종목을 시작해 2년 연속 전국종별스키선수권 전국학생종별슈퍼대회전 회장배전국스키대회 등에서 금메달을 석권했어요.
HI : 운동선수 자녀 뒷바라지가 보통 힘든 게 아니죠.
이 :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한 아이가 운동선수로 무사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족들뿐만이 아닌 여러 주위 분들의 응원이 필요해요. 일단 부모가 그 종목을 박사보다 더 잘 알아야 하는 건 기본인데다,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줘야만 해요. 그런데 아이가 부담을 갖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수로서 어느 위치까지 가느냐보다 중요한 걸 이미 해내고 있으니까요. 이미 자신의 꿈을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용기 있게 도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요.
HI : 그런데 ‘워킹맘’으로도 활동 영역이 굉장히 넓으세요.
이 : 지금은 강릉이 커피의 도시로 불리지만, 10여년전만 하더라도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2010년 각기 다른 두 브랜드의 커피전문점을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또 지난 4년간 ‘바우맘(Bou Mom)’이라는 프리미엄 건어물 사업으로 전국의 마켓을 직접 돌며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뒤, 이번에는 좀 더 확장된 범위로 ‘먹다푸드(MUKDA FOOD)’라는 강릉 지역 특산물 브랜드를 런칭했습니다. 보통 지역 특산물을 즐기려면 꼭 특정 시기에 특정 장소를 찾아야만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계절과 장소에 상관없이 강릉의 푸른 바다 해산물을 즐길 수 있도록 싱싱함과 정성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HI : 여러 마켓에 참여했으므로, 셀러들의 마음을 잘 아시겠어요.
이 : 4년간 셀러, 즉 보부상을 하면서 전국 곳곳을 누볐어요. 셀러들이 굉장히 수고가 많아요. 이동 전시 판매 등 전 과정에 걸쳐 손길과 발품을 팔아야 하는 건 기본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마켓에 참여하다보면 온라인에서 인기가 좋은 제품과 오프라인 현장에서 관심을 끄는 제품이 따로 있고요. 제품에 대한 셀링 포인트를 잡는 건 각각의 몫이겠지만, 마켓을 여는 주최 측과 함께 일하는 셀러들의 호흡도 굉장히 중요해요. 유통이 쉽지가 않은데, 셀러들을 더욱 존중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요. 현장에서 직접 느꼈던 고충을 하나하나 보완해나가고 싶단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HI : 이번 바자회도 모든 업무를 직접 챙기셨죠.
이 : 저희 단체는 기본적으로 기획재정부 등록 지정기부단체입니다. 그래서 미스코리아 바자회 즉미코마켓은 기존의 상업적인 마켓이 아닌 매번 바자회를 할 때마다 굿피플 등 NGO단체에 기부를 하는 사회환원 활동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행복이 미래다’란 문구는 미스코리아 바자회의 오랜 캐치프레이즈인데요. 저희 바자회를 통해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사회배려층 아이들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한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동시에 선사해 드리고 있습니다. 또 각 미스코리아들이 가진 인플루언서 영향력으로 함께 참여하는 업체 모두가 부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 홍보를 돕고, 판매에도 힘을 실어드리고 있습니다.
HI : 앞으로 어떤 엄마, 어떤 사업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이 : 우리 딸 안빈이와 아들 강석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엄마로 곁을 지켜주는게 제 꿈이에요. 그런데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일 생각을 함께 해야 하니, 항상 미안한 마음이 커요. 제가 오롯이 친정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왔던 것처럼 저도 아이들에게 그런 평범한 엄마가 되어주는 것. 어쩌면 그게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엄마가 한 여자로서도 열심히 일을 하고, 미스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도 멋지게 생각해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 멈추지 않으려고요. 무슨 일을 하든 스포츠인의 정신으로 나 혼자보다는 잘사는 것보다 다 같이 잘 사는 방향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김수현(2006년 ‘미’ 미스한국일보) 녹원회 이사 crescent0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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