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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대물림 대신 봉사의 대물림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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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대물림 대신 봉사의 대물림 어떨까요?”

입력
2019.05.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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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경 달서구청행복나눔과 주무관 “복지와 봉사의 결과는 언제나 기대 이상이죠”

안유경 달서구청 행복나눔과 주무관. 그는 20년 넘게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부의 대물림 못지 않은 도움의 대물림 현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안유경 달서구청 행복나눔과 주무관. 그는 20년 넘게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부의 대물림 못지 않은 도움의 대물림 현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0에다 1을 더하면, 아니 2를 더하고 3을 더해도 결국 제로(0)가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복지에 대한 관념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안유경(44) 달서구청행복나눔과 주무관은 부산 곰두리공판장(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과 성서종합사회복지관을 거쳐 달서구청까지 20년 넘게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다. 다양한 기관에서 장애인을 비롯해 청소년,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등의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활동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복지의 생산성”이었다.

“봉사 대상자들이 일정한 시간이 되면 유능한 봉사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한번은 학원에 다니는 게 꿈이라는 여학생에게 대학생 멘토를 붙여줬어요. 이 학생이 나중에 다시 멘토링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선순환이 복지 현장에선 흔한 일입니다. 누군가 말하는 것처럼 깨진 독에 물 붓기가 결코 아닙니다.”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부들이 봉사자로 변신한 이유

성서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주어진 특명은 “주민들이 찾는 복지관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가 근무를 시작한 2000년 즈음만 하더라도 복지관은 힘든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도시락 배달 봉사가 끝나고 나면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빈 공간을 놀리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평범한 주민들이 복지관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전을 펴주는 역할을 해야 했다.

궁리 끝에 인근 대형마트 문화센터를 돌았다. 대형마트의 문화센터를 찾아가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것. 본인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가장 관심이 간 것은 유아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대형마트에서 운영하는 유아 프로그램을 복지관에 가져왔다. 엄마들의 발길이 몰리기 시작했다. 찾는 사람이 없어 개점휴업이나 다름없었던 커피 자판기가 쉴 틈 없이 윙윙 콧노래를 부르며 커피를 뽑았다. 자판기 담당자가 매일 커피 가루 붓는 즐거운 격무에 시달렸다. 그 수익으로 새로운 복지 활동을 기획할 수 있게 됐다.

가장 큰 수확은 프로그램 참여자들 자체였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각자 재능과 개성을 따라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자원봉사와 무료급식, 식도우미, 도시락 배달 등에 나섰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구연동화 동아리였다. 이들은 복지관 내에 있는 어린이집을 비롯해 신청이 들어오는 어린이집을 방문해 구연동화 봉사활동을 펼쳤다.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모아 복지관에서 아나바다 장터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처음엔 맨땅에 헤딩하기였지만, 나중에는 말 그대로 기대하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졌죠. 음식을 만들면 이웃과 나눠 먹고 향약이나 두레, 계를 모아서 마을의 어려움을 두루 살피는 한국인의 심성이 복지관을 통해 꽃을 피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받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되돌려주려는 열정 덕에 한겨울에도 후끈한 복지관으로 탈바꿈했죠.”

◇이주노동자 봉사가 해외봉사로 확장된 사연

다음 프로젝트는 다문화가정이었다. 2003년부터 결혼이민자와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이 다문화 프로젝트 역시 지역에서는 미답지였다. 우선 대상자를 찾아야 했다. 안 주무관은 와룡시장 근처에 중국 출신 결혼이민자가 많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들을 찾아 나섰다. 평소처럼 다소 무모하지만 구체적인 실천으로 시작했다. 발품을 파는 것이었다. 그는 인근 중국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명함을 뿌렸다. “그렇게 해서 되겠어?”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이민자가 하나둘 복지관을 찾아왔다. 이들을 마중물로 다문화도서관, 외국어교실 등 다양한 이민자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고마워하던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당시만 해도 이들에 대한 편견이 심했거든요. 낯선 환경에서 힘들어할 때 손을 내밀어준 복지관 담당자를 친정엄마처럼 따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당시에 도움을 받던 결혼이민자와 이주노동자들이 번듯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직장에서 핵심노동자로 일하고 있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업을 찾은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 없어진 뒤에도 복지관을 떠나지 않았다. 다시 봉사자로 활동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덕분에 다문화강의를 활용한 사회문화통합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었다.

새로운 봉사의 문을 열어준 이들도 있었다. 인도 출신 노동자였던 로가(Loga)씨도 그중의 한명이었다. 로가씨는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체류 기간이 만료되어 인도로 돌아갔다. 그때 복지관에서 함께 봉사했던 이들과 인도 여행을 겸한 해외 봉사를 떠났다. 성서복지관에서 8년을 근무한 뒤 달서구청으로 자리를 옮긴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해외 봉사에 나서고 있다. 인도를 비롯해 베트남, 몽골 등으로 매년 여행 겸 해외 봉사를 나간다.

◇부의 대물림 대신 봉사의 대물림이 대세가 되는 사회를 꿈꾸며

달서구청으로 자리를 옮긴 뒤 활동 영역이 더 확대됐다.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후원단체나 후원자를 발굴해서 작은 복지관에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음은 있지만 방법과 대상을 못 찾는 분들을 발굴해서 가교 역할을 하는 거죠. 작은 복지관들이 하기 힘든 일을 공신력이 있는 관공서에서 대신 해주는 셈입니다. 얼마 전에도 건강검진이나 영화관람 요청을 받고 기부자를 찾아서 연결해 줬어요. 나눔의 체질을 강화하고 규모를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했다. 그것은 바로 ‘봉사의 대물림’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다.

“금수저, 흙수저 하면서 부의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잖아요. 저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봉사의 대물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최 부잣집처럼 가문 대대로 이웃을 살피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받은 봉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돌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 분들을 충분히 많이 봐왔어요. 경제를 비롯해 문화와 교육 등에서 봉사와 배려의 대물림이 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안 주무관은 “서로 돕고 나누며, 이끌어주고 밀어주는 문화가 활발해져서 부의 대물림이 무색해지는 것까지 꿈꾼다”면서 “복지와 봉사는 가장 아름다운 사회활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진승희 객원기자(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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