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30회 특집으로 그동안 소개한 음식을 한데 아울러 코스를 차리는 요령을 살펴 보았다.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한 음식의 가능성을 코스의 맥락 위에서 살펴 본 가운데, 정작 식사의 마무리에 꼭 필요한 커피는 이름만 부르고 넘어갔다. 워낙 방대한 세계인지라 따로 ‘모셔야’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주 코스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을 지금, 커피의 자리를 마련했다.
커피는 한편으로 말을 보탤 필요가 없는 식재료이다. 그만큼 흔하고 누구나 마신다. 그에 맞게 물만 부으면 즐길 수 있는, 믹스를 비롯한 인스턴트 커피의 간편한 세계가 있다. 요즘은 좀 더 커피 맛을 살릴 수 있다는 드립백도 흔하다. 티백과 비슷하지만 커피에 맞게 물을 깔때기에 부어 내린다. 편리함을 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갓 추출한 커피의 맛은 꼭 봐야겠다면 네스프레소를 비롯한 캡슐 커피도 있다. 간 원두가 담긴 캡슐을 기계에 넣고 스위치를 켜는 것만으로 온도가 잘 맞는 에스프레소나 룽고(좀 더 오래 추출해 에스프레소보다 양도 많고 맛도 강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할 일이라고는 캡슐의 구입 및 처리와 물의 보충뿐이니 더 이상 편리할 수 없다. 다만 그렇다 보니 커피를 필요 이상으로 마시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한편 보관과 추출의 편리함을 좇아 커피의 가장 특징적인 몇 가지의 맛만 캡슐에 남겨 놓아 진하면서도 밋밋하다고 느낄 수 있다.
◇원두 직접 갈아서 마시려면
만약 여기까지도 성에 차지 않아서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마음을 조금은 굳게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구매에서 보관, 분쇄에 이르는 원두의 관리를 직접 해야 되기 때문이다. 원두는 결국 굽기에 가깝게 볶아 기름이 배어 나온 열매의 씨앗이므로 오래 보관할수록 기름이 산패해 시큼한 맛이 난다(참기름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한편 원두 부스러기나 추출 후의 찌꺼기 등 쓰레기 처리와 도구의 유지 관리 또한 캡슐 커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번거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맛의 커피를 선택해 마실 수 있으므로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일단 콩을 갈아야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으므로 가장 먼저 구매를 고려해야 할 도구는 원두갈이, 즉 커피 그라인더이다. 원두를 제대로 갈지 못한다면 아예 추출 방식의 개성이나 취향조차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어떤 추출 방식을 선택하든 원두를 잘 갈지 못한다면 제 맛을 내기 어렵다. 기구의 명칭도 그렇고 원두를 ‘간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부수기’에 더 가깝다. 물이 잘 통과할 수 있도록 크기는 균일하지만 각 입자의 모양은 다소 불규칙하도록 원두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블렌더에 딸린 판형이 아닌, 맷돌의 원리에 가까운 입체 칼날(burr)이 달린 그라인더가 필요하다. 물론 믹서 같은 칼날이 달린 그라인더는 1만~2만원 안팎으로 싸다. 하지만 이름처럼 콩을 진짜 가루로 만들어 버릴 뿐만 아니라,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이 원두의 맛을 떨어뜨릴 수 있다(그래서 카페에서는 냉각장치가 달린 버 그라인더를 쓴다). 물론 출발은 수동 버 그라인더로 할 수 있다. 회전 손잡이에 나무 받침 등이 달린, 익숙한 제품 말이다. 다만 소량의 원두를 갈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힘과 시간이 많이 들고, 이론적으로는 원두의 입자 크기를 조정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그래서 전동 버 그라인더가 여러 모로 낫지만 출발점이 10만원 안팎으로 가격대가 높은 데다가 부피마저 크니 구매 전에 실물을 보고 고민할 것을 권한다.
◇커피 직접 추출하는 법
그나마 인력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도구는 그라인더보다 훨씬 싸니 부담이 적어 다행이다. 모든 커피의 추출 원리는 같다. 볶아 맛을 낸 콩을 최대한 균일하게 갈아 한데 모아 담은 뒤 뜨거운 물을 통과시켜 맛 성분을 우려내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집에서 가장 손쉽고 유지관리가 편한 추출 방식으로는 손 내리기와 에어로프레스가 있다. 흔히 ‘드립(drip)’ 또는 ‘푸어 오버(pour over)’라 불리는 손 내리기는 명칭처럼 필터를 두른 깔때기에 간 원두를 담고 물을 부어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드리퍼’라 불리는 깔때기와 필터(종이나 천, 금속), 물줄기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전용 주전자에 모아 담는 ‘서버’까지 갖출 게 은근히 많지만 유지관리는 설거지가 전부이니 속 편하다. 2만원 밑으로도 원두를 뺀 모든 요소를 갖춘 추출 세트를 살 수 있으니 적은 초기 비용으로도 즐길 수 있다.
한편 이름도 모양도 신기한 에어로프레스는 사실 주사기의 몸통인 피스톤을 뻥 튀겨 크게 만든 기구이다. 한쪽 끝에 필터와 마개를 끼우고, 반대쪽 끝으로 원두와 물을 부은 뒤 잔에 올려 힘을 주어 눌러 커피를 추출한다. 피스톤을 통해 약간의 압력이 가해지므로 커피 맛이 좀 더 두텁고, 드립 커피에 비해 추출도 신경이 덜 쓰인다는 장점이 있다. 유지관리도 설거지가 전부이며, 딸려 오는 종이 필터를 금속 제품으로 바꾸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인터넷에서 3만6,000원 안팎에 살 수 있다.
어떤 방식을 선택했든 추출은 다음의 요령으로 한다. 원두는 마실 커피의 12~16:1 비율로(머그컵 하나 분량인 커피 300㎖라면 원두 25g 안팎) 저울에 달아 간다. 물을 끓여 90~95℃까지 온도를 내린 뒤 각 기구의 사용법에 맞게 커피를 추출한다. 손 내리기는 깔때기에 담긴 커피에 약간의 물을 부어 한 번 적셔 준 뒤 3~4분에 걸쳐 지속적으로 물을 붓는다. 에어로프레스는 세계 대회도 있는 등 간단한 도구이면서도 추출 방식이 다양한데, 거꾸로 뒤집어 커피와 물 절반을 더하고 30초동안 두었다가 나머지를 부은 뒤 마개를 잠그고 다시 뒤집어 잔에 올려 천천히 피스톤을 눌러 추출하는 방식을 권한다.
인력보다 전동 기계의 힘을 선호한다면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커피머신이다. 깔때기에 담긴 필터에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므로 드리퍼와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기계가 알아서 커피를 내려주는 데다가 타이머로 추출 시간도 맞출 수 있어 바쁜 아침에 유용하다. 두 번째는 본격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고압으로 커피의 정수만을 빠르게 추출해 주는 에스프레소는 엄격하게 본다면 비싼 장비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카페의 음료이지만 요즘은 핵심인 압력을 아쉽지 않게 발휘해주는 가정용 기계도 선택의 폭이 다양할 정도로 발전했다. 다만 시늉만 내는 수준을 벗어 나려면 국내 판매가가 100만원에 가깝게 형성된 기계가 필요하고, 부속이 많으므로 유지관리도 복잡할 수 있다. 따라서 커피를 하루에 한두 잔 정도만 마신다면 효과적인 투자가 아닐 수 있다.
◇원두 고를 땐 일단 소량으로
기구를 다 갖췄다면 원두를 마련하자. 마트부터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 코스트코 같은 양판점까지 일반적인 식품의 구입처라면 원두를 살 수 있다. 가장 흔하고도 익숙한 구입처인 만큼 직접 커피를 추출하기 시작할 때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인터넷을 통한 국내 로스터리의 원두 구입이 있다. 이름을 걸고 커피를 직접 볶아 판매하는 카페는 물론, 전문적으로 커피만 볶아 통신판매를 하는 업체도 많다. 선택의 폭이 너무나도 넓은지라 시도하고자 마음을 먹어도 막막할 수 있는데 가격이면 가격, 맛이면 맛 등 한 가지의 기준을 정해 놓고 판매업체를 찾아 적어도 두세 번은 다른 원두를 맛보면서 좋아하는 지점을 찾을 것을 권한다.
통신판매는 판매자와의 직거래이므로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만 보고 덜컥 많은 양을 샀다가는 맛없는 커피를 오랫동안 억지로 마셔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으니 주의한다. 예를 들어 25g의 원두로 커피를 매일 한 잔씩 마신다면 1㎏짜리 한 봉지로는 무려 40일이나 커피를 마셔야 한다. 맛이 없으면 처음부터 처치곤란이지만, 맛이 좋더라도 소진되는 40일 내내 품질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완전히 믿음이 가는 판매처를 찾을 때까지는 열흘분 정도의 소량 구매를 권한다. 맛보기용 원두를 조금씩 묶어 파는 곳이 있다면 적극 활용해, 가격이 좀 높더라도 일단 여러 종류의 맛을 보고 본격적으로 선택할 것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판매자와의 직거래에 전문가의 식견을 더한 구독 시스템이 있다. 말 그대로 로스터리에서 원두를 알아서 정기적으로 보내 주는 제도로, 끝없이 맛만 보며 원하는 커피를 찾기만 하다 지쳐 나가 떨어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직거래이므로 가격도 부담이 적은 편이다. 인터넷으로 ‘원두 구독’을 검색하면 국내 업체를 찾을 수 있고 한국으로 배송하는 해외 로스터리도 있다. 덴마크의 ‘커피콜렉티브(https://coffeecollective.dk/)’, 영국의 스퀘어마일(https://shop.squaremilecoffee.com/)’이 대표적인데, 배송료 포함 5만원 안팎에 700~750g의 원두를 한 달, 혹은 격주 간격으로 받을 수 있다. 커피라는 식재료가 워낙 민감하니 해외 배송의 기간이며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소위 ‘가성비’면에서 아쉬운 구석이 별로 없다.
◇커피 맛 돋우는 커피책
커피 같은 식재료라면 책을 통해 공부를 좀 해 보는 것도 좋다. ‘공부’라고 말했지만 대체로 재미있고 커피맛도 북돋아 준다. 첫 번째 책은 ‘블루보틀 크래프트 오브 커피 (한스미디어ㆍ230쪽ㆍ2만8,000원)’이다. 블루보틀은 미 서부 베이 에어리어 지역에서 출범해 일본을 거쳐 이제 한국에도 상륙하는 로스터리 카페이다. 창업의 사연부터 커피의 역사나 종류를 비롯해 커피와 어울리는 음식까지, 많지 않은 쪽수에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여러 커피 추출 방식을 한데 아울러 쉽게 설명하고 있으니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려는 초심자에게 좋은 책이다. 두 번째 책은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을유문화사ㆍ642쪽ㆍ2만3,000원)’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크 펜더그라스트가 정리한 커피의 문화사로, 방대한 분량부터 커피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말해 준다. 단숨에 읽어 나가기도 좋지만 커피 한 잔 마실 때마다 일화 하나씩 읽어 가는 것도 좋다.
음식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