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오전 2시.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상대원동 일대에서만 벌써 5번째 사건이었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관내 폐쇄회로(CC)TV를 모두 뒤졌지만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마땅한 단서가 없어 답보상태에 빠진 성남중원서 형사들은 인근 골목에 주차돼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에 주목했다. 차주의 동의를 얻어 확인한 블랙박스에는 범행 당일 피해자의 집 쪽 골목에서 뛰어나오던 범인의 모습이 3초 정도 녹화돼 있었다.
이후 경찰은 20여 일 간의 잠복 끝에 지난달 26일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하던 정모(58)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상대원동 일대에서 발생한 5차례 모두 정씨의 범행이었다.
성남 중원서 관계자는 “자칫 못 잡을 뻔했는데 블랙박스에 담긴 3초의 영상이 유일한 단서가 됐다”며 “블랙박스 영상을 근거로 피의자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고, 잠복 끝에 추가 범행하는 피의자를 붙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남 분당경찰서도 지난해 중순 손님이 놓고 내린 지갑을 슬쩍 한 대리기사를 붙잡았다. A씨의 차량 맞은편에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에 대리기사의 모든 행동이 담겼기 때문이다. 경찰은 B씨를 점유물 이탈 횡령 혐의로 B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인천에서는 지난 2일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택시기사가 인근을 지나던 차량의 블랙박스에 사고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경찰에 긴급체포 되기도 했다.
차량용 블랙박스가 똑똑해지고 있다. 교통사고 때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블랙박스가 절도범과 뺑소니 피의자 등 경찰의 범인 검거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CCTV처럼 현장의 생생한 영상을 장시간 담지는 못하지만 3~5초 가량의 찰나의 시간만으로도 범인의 인상착의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이 영상을 제보한 이들에게 2017년 말부터 포상 및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한 이후 블랙박스 영상제보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3일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상금 또는 표창장을 받은 영상제보자는 모두 112명으로 이중 블랙박스 영상제보자는 15명이다. 올 들어서도 12명 중 블랙박스 제보자가 2명이나 됐다.
이처럼 블랙박스가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자,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을 제공한 차주에게도 포상금 지급을 현재보다 더 활성화하기로 했다.
그 동안 적극적으로 영상을 제보하는 시민에게만 주던 것을 ‘블랙박스 열람 동의’ 만 해도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가 포함됐다면 포상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은 상대원동 절도사건 범인 검거에 일조한 블랙박스 차주 송모(53)씨에게 포상금과 함께 우리동네 시민경찰 17호로 위촉했다.
허경렬 경기남부경찰청장은 “차량용 블랙박스는 CCTV가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구석구석 비추므로 범인 검거 및 범죄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며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을 제공해 범인 검거에 기여한 시민들에게 신고보상금을 지급하고 우리동네 시민경찰로 선정해 공동체 치안이 활성화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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