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이를 테면 명품 가방이다. 동네, 브랜드, 제조회사, 유행 등에 따라 S급, A급이 갈린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사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대대손손 물려 주려고 하는 것도 비슷하다. 결정적 차이는 가격. 집은 평생 월급을 모아도 사는 게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집은 ‘사고파는 상품’이자 ‘재산 증식 수단’이다.
미국 신경인류학자 존 S. 앨런은 저서 ‘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에서 집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는 풍조에 반대한다. 그는 집을 ‘인간의 생존과 번식, 진화를 이끈 요람’이라고 정의한다. 신경과학, 고인류학 자료를 동원해 “집이 있었기에 인류는 인간답게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아늑하고 포근한.’ 사람들이 집을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이다. 저자는 인간이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의 정체가 수천 년을 거듭해 온 ‘자연 적응’의 결과라고 말한다. 초기 인류에게 집은 외부의 위협에서 벗어난 피난처이자, 세상으로 출격을 준비하는 베이스 캠프였다. 무엇보다 집은 인간의 뇌를 온전히 쉴 수 있게 해 줬다. 문명 이전의 인류에게 집 밖은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공간이었다. 집 밖에서 뇌는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고서야 뇌의 에너지를 다시 끌어 모으는 ‘휴지기’를 가질 수 있었다. 저자는 인류가 집에서 보낸 시간을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집이 회복의 장소인 동시에 생존 능력을 키우는 장소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집은 인류의 양육 방식도 바꿨다. 진화를 거듭하면서 인간 뇌의 평균 부피는 침팬지보다 3배 가까이 커졌다. 어미 침팬지는 한쪽 팔에 새끼를 안은 채 먹이를 구하러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인간에게는 버거운 일이 됐다. 인간의 아이는 다른 영장류의 새끼보다 훈련하고 성장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인류에겐 안전한 ‘양육과 학습의 공간’을 따로 두는 것이 불가피했다. 집을 양육의 공간으로 삼은 뒤 남성들도 양육에 협력하기 시작했다. 집의 등장이 부모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형태의 가정을 탄생시킨 것이다.
저자는 집이 인간의 공감 능력도 키웠다는 이론을 편다. 미국의 딕 체니 전 부통령과 롭 포트먼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은 공화당 출신의 보수 성향 정치인이면서도 동성 결혼을 지지했다. 두 사람 모두 동성애자 자녀를 둔 것이 결정적 이유다. 집에서 맺는 가족과의 정서적 교감이 정치인의 정치적 입장까지 바꾼 이 사례는 ‘롭 포트먼 효과’라고 불린다. 집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끈끈한 유대 관계는 집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안락한 선물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부동산에 목을 매는 것은 돈을 좇는 욕망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에서 낙오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대출 사태가 저소득층 거주지역에 집중된 것은 집 구매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
존S.앨런 지음 이계순 옮김
반비 발행ㆍ368쪽ㆍ1만8,500원
저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 집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방편으로 일상 활동의 중심을 집으로 더 많이 옮겨 갈 것을 제안한다. 먹고, 자고, 쉬고, 배우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들을 집에서 주로 해보라는 것. 삶의 가치는 높아지고, 생산성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집순이’와 ‘집돌이’가 실은 영리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부동산 공화국’인 한국 사정에 비춰보면, 책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집값을 벌고 갚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집의 노예가 되는 건 아무래도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집의 주인’이 될 것. 책의 간명한 메시지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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