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방화ㆍ살인사건 등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가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치료가 중단된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위험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이른바 ‘고위험군’을 적극 발굴해 치료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낙인 효과가 우려되고 예산 지원 방안도 빠진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1일 법무부, 대검찰청, 경찰청과 실무 협의회를 열어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한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먼저 고위험군을 발굴하기 위해 복지부는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된 환자 7만6,348명에 대해 사례관리 상황을 일제 점검하고, 경찰도 기존 신고사항 중 정신질환자 관련 사건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이달 26일까지 추리기로 했다. 이후 도움이 필요한 정신질환자에 대해선 지역별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적극 개입해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범행이 중하지 않더라도 정신질환 등으로 재범의 우려가 높은 경우 응급입원 조치, 감정유치 신청 등을 적극 검토한다. 초동 수사단계에서도 정신질환 여부와 재범위험성 관련 자료를 수집할 계획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치료명령ㆍ감호를 적극 청구하기로 했다. 또한 치료 감호시설을 확충하고 관련 법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이르면 다음주에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강화 △정신질환 조기 발견과 초기발병환자 집중관리 △소방과 경찰이 참여하는 시군구별 지역 정신응급대응협의체 설치 등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다만 의료ㆍ복지 현장에서는 정부가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졸속 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불만이 크다. 전에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구호만 거창하고 관리와 치료에 필요한 예산은 배정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돈 안 들고 실효성이 의문인 조치만 나열했다는 것이다. 일제점검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효과로 오히려 치료를 기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현장 경력 20년의 전준희 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은 “정신센터에 등록된 환자들은 안전한 편인데 사고가 터졌다고 범죄자 취급하듯이 일제 점검한다면 누가 앞으로 정신센터에 등록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전 센터장은 또 “20년간 인력부족에 시달렸는데 일제점검을 한다고 그간 불가능했던 사례관리가 가능해질지도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1986년 개원한 정신질환자 지원기관 태화샘솟는집의 문용훈 관장 역시 “복지부는 항상 정신건강증진시설을 늘리겠다고 해왔지만 실행한 건 거의 없었다”면서 “퇴원 이후에 지역에서 고립감을 느끼지 않고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책과 예산안을 내놔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정신질환자의 재활 등을 돕는 정신재활시설이 전혀 없는 시군구가 104개에 이른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전문의) 역시 일제점검에 찬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이사는 “환자를 찾아내면 치료할 수는 있겠다”면서도 “일제점검 자체가 정신질환자를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고 낙인 찍는 것이고 그 결과 치료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의사들로서도 부담스럽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홍정익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일제점검에는 정신복지 현장의 인력현황을 확인하려는 목적도 있다”라면서 “결국 재정당국과의 협의에서 정신건강 예산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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