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9일 전후 방한 일정 조율… 대북 식량지원 등 공조안 논의
북한 시혜적 차원의 지원 거부감… 정부 “북한 비핵화와는 무관” 강조
북한과 미국의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제반 사안을 조율하는 한미 워킹그룹(실무협의체) 회의가 다음 주 열릴 예정이다.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는 수단이자, 대화 재개를 위한 명분으로 한미가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논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외교부는 2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방한 일정을 현재 한미 양국이 조율하고 있다”며 “워킹그룹 회의에서 다양한 양국 간 대북 정책 관련 현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한미 외교 당국은 비건 대표가 9일 전후 방한하는 쪽으로 일정을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워킹그룹 회의가 다음 주 열리면 3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회의 이후 약 두 달 만에 열리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비건 대표와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전화 협의를 갖고 북러 정상회담을 포함,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향후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워킹그룹 회의에선 대북 인도적 지원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실무 협상을 다시 시작하자는 미국 메시지에 북한이 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인도적 차원의 교류를 통해 대화 물꼬를 트려고 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지난해 12월 북미 협상에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을 찾은 비건 대표는 ‘북한 여행 금지 조치 재검토’ ‘타미플루(독감 치료제) 제공’ 등 대북 선물 보따리를 풀어놨던 전례가 있다. 정부도 이견이 없는 듯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북한 주민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은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에 대해선 한미 간 공동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지원이 당국 간 논의될 공산이 크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현 단계에서 당국 차원의 식량 지원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유니세프(Unicef)와 세계식량계획(WFP)에 남북협력기금을 공여해 북한 모자보건ㆍ영양지원 사업에 지원하기로 한 2017년 9월의 의결이 효력을 다한 만큼, 한미가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메시지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는 2월 “식량 생산량 감소로 148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다”며 국제기구에 긴급 식량 원조를 요청한 바 있다. 지난달 29일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금보다 쌀이 더 귀하다”고도 했다.
다만 북한이 한미의 손짓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시혜적 차원의 지원에 거부감을 보여온 데다, 단발성 조치를 비핵화 협상과 연결하려는 식의 접근을 북한으로선 달가워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앞서 타미플루 역시 북한의 무반응으로 대북 전달이 결국 무산됐다. 정부 소식통은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이번 한미 소통이 북한과의 사전 교감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서울 도렴동 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인 상황과 무관한 사안”이라며 북한 비핵화와 해당 사안이 별개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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