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인정하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격주 금요일 <한국일보>에 글을 씁니다.
 <6>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19세기 프랑스 화가인 펠릭스 트루타가 그린 '누워있는 바쿠스 여신'. 창 밖에서 여성을 훔쳐보는 남성의 모습은 여성을 향한 폭력적 시선을 상징한다. 열화당 제공

그럴 리 없겠지만,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단 한 작가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존 버거’를 고를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존 버거(1926~2017).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을 벗어나 활동한 작가. 따뜻한 지식인, 행동가, 위대한 예술가. “위대한 예술가란 평생 투쟁을 해 온 사람이다.”(129쪽) 농부, 이민자, 가난한 사람, 죽은 사람, 여자, 노숙자, 혁명가, 동물들, 예술가. 존 버거는 이들을 주로 작품에 데려왔다. 그림, 시, 소설, 미술 평론, 사회정치 평론,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들며 창작했고, 이 모든 것에서 빛났다.

1972년 영국 BBC텔레비전 시리즈 강의에서, 존 버거는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이 강의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가 이전까지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그림 안에서 ‘시선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성의 위치를 문제 삼는 대목이다.

“여자들의 사회적 존재는 이렇게 제한된 공간 안에서 보호, 관리를 받으며 그 여자들 나름으로 살아남으려고 머리 쓰고 애쓴 결과로 이룩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그녀의 자아는 찢겨 두 갈래로 갈라진다. 즉 여자는 거의 계속해 스스로를 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갖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는 항상 그녀를 뒤따라 다닌다.”(54쪽)

존 버거는 오랜 세월 “타인에게 평가 받는 자기”의 감정을 강요 받아 온 여성에 주목한다. 유럽 회화의 누드화에서 “여자들이 일종의 구경거리로 보여지고 판단되는 몇몇 기준과 관습들”을 지적한다. “특별한 대상으로 보는 것은 대상으로서의 그 몸을 이용하도록 자극한다.”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대상화), 특별하게 생각하고(관습), ‘이용’하기까지, 이 모든 과정에 ‘시선의 문제’가 있음을 꼬집는다. 놀랍지 않은가? 1970년대 초, 이런 여성주의 시각으로 문제를 제기한 남성작가라니! “하지만 여자를 보는 방식, 즉 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76쪽)고 한 존 버거의 말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씁쓸하다.

그는 유럽 문화에서 재산과 예술 사이의 관계를 따져 보기도 한다. “작품이 감동적이고 신비스러워진 것은 시장 가격 때문”이라고 꼬집으며, 예술의 ‘가짜 종교성’을 들춘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광고의 영향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논한다. “자본주의는 다수의 관심을 가능한 한 좁은 범위 안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그 생명을 이어 나간다.”(178쪽) 당시로는 파격적인 그의 논리에 반발하는 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존 버거의 초상. 열화당 제공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이것은 창작자의 기본 자세다. 다르게 보면 다른 사람이 된다. 다른 것을 만들고,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시심(詩心)이 가득 담긴 존 버거의 소설들이지만, 논픽션도 아름답다. 놀라운 문장과 빛나는 사고로 독자들을 선동하는, 위험하게 아름다운 글이다.

글을 쓰기 전에 자주 들여다보는 그의 문장이 있다. “우리 같은 드로잉을 하는 사람들은, 관찰된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존 버거 ‘벤투의 스케치북’) 창작에 임하는 그의 자세를 배우고 싶어 반복해 읽는다. 존 버거는 아흔의 나이로 사라졌지만 그는 언제나 내 책상 곁을 서성인다. 나는 따뜻하고 날카로운 그의 사유를 느끼며, 그 영향 아래서 작업하는 게 즐겁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열화당 발행ㆍ190쪽ㆍ1만4,000원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를 보면 주름으로 가득한 존 버거의 얼굴, 그림을 그리는 그의 투박한 손이 나온다. 상체를 기울이며 타인의 말을 듣는 존 버거를 볼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이 ‘한결같이’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흔치 않은 일이다. “내가 이야기꾼이라면, 그건 내가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사람. 쓰는 자는 우선 ‘듣는 자’임을, 그리고 ‘다르게 보는 자’임을 나는 존 버거에게 배웠다.

박연준 시인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