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꿈을 만나다] 유희관 “직구가 120㎞라고? 날 보고 희망을 가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꿈을 만나다] 유희관 “직구가 120㎞라고? 날 보고 희망을 가져”

입력
2019.05.02 07:00
25면
0 0

 <7>‘느림의 미학’ 유희관과 이수중 후배 김산 

 #어린 선수들은 꿈을 먹고 자랍니다. 박찬호와 박세리, 김연아 등을 보고 자란 선수들이 있어 한국 스포츠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스타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한국일보>는 [꿈을 만나다] 시리즈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롤모델이자 스타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고민을 나누며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두산 유희관(왼쪽)이 모교 후배인 이수중학교 투수 김산에게 변화구 그립을 알려주고 있다. 고영권 기자
두산 유희관(왼쪽)이 모교 후배인 이수중학교 투수 김산에게 변화구 그립을 알려주고 있다. 고영권 기자

두산 좌완 투수 유희관(33)은 프로야구에서 가장 느린 공을 던지는 선수다. 올해 그의 직구 평균 시속은 127.4㎞, 가장 빠른 공도 130㎞ 초반이다. 비록 공은 남들보다 느리지만 야구를 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느린 공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편견과 싸워 이겨냈고, 프로에 와서도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두산 구단 좌완 최초로 6년 연속 10승을 달성했다.

유희관이 던진 건 단순한 공 하나가 아니었다. 꿈과 희망을 담았다.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해 좌절하는 꿈나무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가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모교(서울 이수중) 후배 김산(3학년)군을 최근 잠실구장에서 직접 만난 것도 생생한 경험과 용기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인 2013년부터 유희관의 경기 모습을 보고 팬이 됐다는 김군은 “우상을 실제로 만나니 꿈만 같다”며 “6년 전 TV 중계로 유희관 선배의 투구를 봤는데, 변화구로 타자를 유혹하다가 직구를 딱 꽂을 때 너무 멋있게 느껴져서 꼬박꼬박 선발 등판 경기를 챙겨보고 있다”고 고백했다. “나 만나러 온다고 억지로 롤모델이라고 한 거 아냐?”라는 농담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푼 유희관은 준비한 유니폼과 모자를 선물하며 “나중에 네가 더 유명해지면 나도 유니폼 하나 줘야 한다”고 웃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다음 김군은 마음에만 담아둔 고민을 유희관에게 털어놨다. “지난해까지 내야수를 하다가 투수로 전향한 지 1년 밖에 안 됐고, 직구도 최고 120㎞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유희관은 “나도 외야수를 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투수를 본격적으로 했으니까 늦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 날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라고 다독였다.

유희관도 빠른 공에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처음 투수를 시작할 때 스피드가 안 나와 고민이 많았는데, 팔이 빠져라 던져도 140㎞를 못 넘겼다. 그래서 김군의 마음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유희관은 “컨트롤은 좋니?”라고 김군에게 물었고, 김군은 “그건 괜찮아요”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다시 유희관은 “스피드와 제구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면 힘들었을 텐데, 난 스피드를 포기했어. 대신 컨트롤을 선택해 확실한 장점으로 만들려고 캐치볼을 할 때도 상대의 가슴에만 일부러 던졌어. 매일 하는 캐치볼이라 지겨울 수도 있지만 공 하나, 하나에 집중해서 던지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나중에 손 끝에 감각이나 컨트롤도 더 좋아졌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감이야. ‘아무리 느려도 삼진을 잡을 수 있다. 누가 뭐래도 난 최고’라는 생각을 가져야 돼”라고 조언했다.

유희관이 김산군에게 유니폼을 선물하며 사인과 함께 ‘야구 열심히 해’라는 응원메시지를 적고 있다. 고영권 기자
유희관이 김산군에게 유니폼을 선물하며 사인과 함께 ‘야구 열심히 해’라는 응원메시지를 적고 있다. 고영권 기자

김군은 “자신감을 갖고는 있는데, 잘 던졌다고 생각하는 공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되지 않을 때 화가 나서 표정 관리가 안 돼요. 소년체전에서 처음 등판했을 당시 우리 팀 선발 투수가 1회부터 흔들려서 곧바로 구원 투수로 나갔는데 저도 같이 흔들렸어요. 볼, 볼, 볼 하다가 가운데로 넣으려고 하니까 상대 타자에게 자꾸 맞아 나가고… 많이 흔들리더라고요”라고 한숨을 쉬었다. 유희관은 “왜 이렇게 흔들렸니? 땅에 지진 났나”라며 웃은 뒤 “나도 스트라이크를 안 잡아줄 때 표정 관리가 안 되는데”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아직 투수 경험이 없으니 떨릴 수 있어. 우리 같은 투수는 90% 이상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잡고 가야 해. 볼 카운트가 몰리면 무조건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니까 불리할 수밖에 없어. 모자에 ‘초구 스트라이크’라고 적어두는 게 좋을 거 같아. 또 떨리면 호흡이 빨라져서 평상시 하던 리듬, 밸런스로 못 던져. 그럴 때 형 같은 경우는 일부러 마운드 옆으로 빠져 신발의 흙을 털거나, 로진을 만지거나, 묶였던 신발 끈을 그냥 풀어서 다시 매고 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안정시켜. 투구에 다시 집중할 수 있는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 필요가 있어”라고 설명했다.

후배에게 질문만 받던 유희관은 김군이 야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했다. 김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했어요. 부모님이 두산의 열혈 팬이라 저도 ‘두린이’(두산 어린이 팬) 출신이에요. 야구는 제가 좋아서 스스로 시작했어요”라고 답했다. 동네 주차장에서 테니스 공으로 친구들과 야구만 했던 기억이 있는 유희관은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하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반대했어. 외아들이고, 집에 운동했던 분이 없었으니까. 울고 불고 해서 야구를 시켜달라고 한만큼 단 한번도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한 적이 없었어”라고 털어놨다. 김군 역시 “저도 그만두겠다고 한 적은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유희관은 “야구를 한 날보다 할 날이 몇 배 더 많을 테니까 더 좌절할 일도, 힘들 일도 많을 거야. 지금은 단지 밝게 웃으면서 재미 있게 야구를 했으면 좋겠어. 그럼 실력이 발전하는데 도움 될 거야. 나중에 잘 성장해서 우리 같은 팀에서 다시 만나자”고 당부했고, 김군은 “유희관 선배를 만난 건 저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꼭 좋은 선수가 돼서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