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남북관계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와 그 주변지역에서 분단을 넘어 겨레를 이으며, 평화를 염원하는 민간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4ㆍ27 판문점선언 발표 이후 남북 정상은 9월 평양공동선언을 연이어 발표하며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놓았다. 그리고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을 이뤄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 측의 선 비핵화 주장과 북한의 수용 불가 입장으로 인해 6·12 북미공동성명 이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남북관계 또한 숨을 고르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미국이 대북 제재의 고삐를 바짝 죄면서 남북관계의 자율성은 크게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다. 평화와 번영의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다시금 깊이 절감케 한다.
이런 상황에서 DMZ와 그 주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행사와 평화 관광은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의 간절한 소망들과 어울려지면서 묘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4월 27일 판문점선언과 9ㆍ19 군사합의의 성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DMZ 인근 평화둘레길이 강원도 고성지역에 처음으로 열렸다. 또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지역이 5월 1일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필자도 현장의 분위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권총뿐 아니라 방탄 헬멧도 쓰지 않고 남북한 경계병들이 비무장 상태로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생소하게 보일 정도로 여전히 미완성의 평화 상태이긴 하지만 확실히 긴장은 완화되어 있었다. 이전보다 자유롭게 판문점 회담장을 비롯해 지난해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교를 나누었던 도보다리에서의 감동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북측 지역에서도 다양한 외국 관광객이 판문점을 견학하고 있었는데, 이들도 판문점에 가득찬 평화의 기운을 함께 호흡하면서 감동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남북은 지난해 9월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 이후, 10월부터 지뢰 제거, 초소ㆍ화기 철수 및 인원 조정, 남북ㆍ유엔사 공동검증, 감시장비 조정 공동현장 조사 등으로 판문점 비무장화를 이행해 왔다. 아직 판문점에서 남북 측 지역을 오가는 자유 왕래는 실현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역시 시간문제로 보였다.
DMZ와 판문점에서의 평화 불씨 살리기 움직임은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난관을 이 땅의 주인인 민초들의 주인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몸부림들이고, 문재인 정부가 보다 담대하게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서 현 정체 국면을 풀어주기를 바라는 외침으로 비쳐졌다. 그 어떤 난관과 장애가 있어도 남북한 주민들의 총의가 집약된 남북정상선언들을 지키고 실천하여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 나가기를 염원하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평화 번영으로 가는 길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민초들의 참여를 통해 열릴 수 있다는 어느 민간단체의 호소문도 귀에 솔깃하게 와 닿았다. “담쟁이 잎 하나가 수천 개의 담쟁이 잎을 이끌고, 결국 그 높은 벽을 넘는다. 오늘 이 분단의 담벼락에서 맞잡은 우리의 작은 손이 결국은 높은 분단의 장벽을 타고 넘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기운으로 가득 차기를 염원한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참여한 DMZ 평화 인간띠 잇기 행사에서 나온 이 선언문은 우리가 왜 지치지 않고 평화의 여정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DMZ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에 수십 년간 ‘비극의 땅’이라 불렸다. 동족 간의 전쟁을 통해 생겨났고, 휴전 발효 당일까지 목숨을 건 고지 쟁탈전 과정에서 지워지지 않은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비록 생겨나지 말았어야 하는 땅이지만 이제 DMZ는 지속 가능한 평화 실현의 꿈을 이루는 평화 지대로 거듭 태어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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