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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왕, 종전 70주년 회견때 “겸허히 과거 돌아봐야”… 아베 우경화 견제할까

입력
2019.05.01 15:39
수정
2019.05.05 20:3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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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재팬, 새로운 시작] <하> 일본은 어디로 가나

그동안 정치색 잘 안 드러내… 아버지와 다른 행보 나설지 주목

나루히토 새 일왕과 마사코 왕비가 1일 도쿄 고쿄에서 열린 즉위 후 조현의식에서 즉위 첫 소감을 밝히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나루히토 새 일왕과 마사코 왕비가 1일 도쿄 고쿄에서 열린 즉위 후 조현의식에서 즉위 첫 소감을 밝히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1일 레이와(令和) 시대를 연 나루히토(德仁ㆍ59)는 전후 세대로서 즉위한 첫 일왕이다. 왕실 전통에 따라 3세 때 부모와 떨어져 영빈관 별장에서 생활했던 아키히토(明仁ㆍ재위 1989~2019) 전 일왕과 달리 양친의 손에 길러졌고, 대학 졸업 이후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것도 선대 일왕과 다르다. 일본 안팎에서 나루히토 일왕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60년 태어난 나루히토는 왕족 교육기관인 가쿠슈인(學習院)을 거쳐 1983년부터 2년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유학했다. 그는 유학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이 담긴 ‘템즈강과 함께’란 책에서 “자신의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매우 귀중하고 유익했다”며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 중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가쿠슈인대에선 역사를 전공했으나 옥스퍼드대에선 18세기 템즈강의 수운(水運)시스템을 연구했다. 이를 계기로 유엔 ‘물과 위생에 관한 사무총장 자문위원회’ 명예총재를 맡는 등 물을 포함한 환경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날 트위터에 레이와 시대 개막을 축하하면서 “작년 3월 브라질리아 물 포럼에서 뵙고 꽤 깊은 말씀을 나누게 해주셔서 감사한다”고 밝힌 대목도 이와 연관된다. 등산과 어릴 적 배운 비올라 연주가 취미인데, 2004년 7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 우호 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 정명훈과 협연하기도 했다.

왕실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자유로운 생활은 새 일왕의 배우자 선택에 영향을 줬다. 1986년 스페인 공주의 일본 방문 환영식에서 만난 외교관 오와다 마사코(大和田雅子)에게 호감을 느끼고 7년 구애 끝에 결혼했다. 외교관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이유로 망설인 마사코를 설득했고, 전문직 여성을 왕세자비로 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던 왕실의 반대도 극복했다.

왕실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에 유산을 경험했던 마사코는 결혼 8년 만에 2001년 아이코(愛子) 공주를 낳았다. 왕실에선 2002년부터 왕세자비의 대외활동을 막으며 아들을 낳으라는 압박이 컸고, 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했다. 나루히토는 2004년 “마사코의 경력과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아내를 감싸는 발언이었지만 왕실 전통을 중시하는 세력들로부터는 불만을 샀다. 궁내청은 2006년 마사코가 적응장애를 앓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나루히토와 마사코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피해지역을 방문해 아키히토 전 일왕 내외처럼 무릎을 꿇고 피해자들을 위로했고, 2013년 4월 네덜란드 방문으로 11년 만에 부부가 함께 공무를 위한 외국 방문을 재개하며 주변의 우려를 잠재웠다.

나루히토는 정치색이나 역사관을 드러내는 발언이 드물었다. 종전 70주년을 앞둔 2015년 2월 기자회견에서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려고 하는 지금, 겸허히 과거를 돌아보고 전쟁을 체험한 세대로부터 이를 모르는 세대에게 비참한 체험이나 일본이 밟아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정도다. 나루히토가 즉위 후 첫 소감에서 세계 평화를 강조한 것은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평화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전쟁 책임론이 따라다닌 히로히토(裕仁ㆍ재위 1926~1989)와 이를 극복하려 평화를 강조했던 아키히토에 비해 전쟁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헌법상 정치 행위를 할 수 없는 한계를 존중하면서도 선대와 다른 새로운 행보를 모색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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