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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웃는 봄날의 궁궐

입력
2019.05.02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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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야간조명. 왕태석 기자
경복궁 근정전 야간조명. 왕태석 기자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 ‘시경’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조선 정궁(正宮)의 이름, ‘경복(景福)’이 되었다. 백성과 더불어 길이 복을 누리겠다는 바람과 의지가 아니었을까. 조선시대 가장 먼저 지어졌던 경복궁은 엄숙한 공간으로만 쓰이지 않았다. 경회루에서는 외국사신을 접대하고 나라의 큰 잔치를 열었다. 산과 물, 그리고 누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잔치를 열기에도 최적의 장소이다.

궁궐의 축제는 2019년에도 열리고 있다. 경복궁ㆍ창덕궁ㆍ창경궁ㆍ덕수궁ㆍ경희궁과 종묘에서 5일까지 열리는 궁중문화축전이다. 궁중예술을 포함한 우리 전통문화를 이 시대에 맞게 즐길 수 있도록 시작된 축제가 올해로 5회째를 맞았다. 9일간 총 46개 프로그램이 준비되는 축제로, 매년 관람객이 20만명이 넘는다. 올해부터는 경희궁이 처음으로 축제의 공간에 포함됐다.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 훼손, 재건, 복원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궁궐은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궁궐은 역사 속의 장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 살아 숨쉬는 우리 모두의 공간으로 스며들고 있다.

2007년 대한민국전통연희축제를 준비하면서 궁중의 행사와 전통연희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규모 궁중 행렬의식에 다양한 민간 공연예술이 유입되고 의례와 오락에 필요한 민속예술이 동시에 향유되었던 것이다. 2013년에 시작한 서울아리랑페스티벌에서는 경복궁 중수공사(1865)가 지역 민요를 전국적으로 전파한 계기임을 알게 됐다. 궁과 민간의 문화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고민을 넘어, 이번 궁중문화축전에서는 전통과 현대 공연 양식의 결합을 고민했다.

이번 행사에 경회루 역사상 처음으로 대형 크레인을 들여오게 된 계기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무대 연출이 들어간 공연인 ‘화룡지몽’이 축전기간 매일 밤 열린다. 경복궁 야간 개장의 티켓을 발 빠르게 준비하고 한복을 차려 입은 관객들이 아름다운 공연을 보며 고즈넉한 우리 궁을 기억에 새긴다.

조선말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고종의 꿈을 오롯이 간직한 덕수궁의 역사도 공연으로 되짚어 본다. 전통적 목조 건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공존한 덕수궁은 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새겨진 곳이다. 1902년에는 석조전 한 쪽에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극장인 협률사(協律社)가 세워졌다. 고종 재위 40주년을 축하하며 ‘소춘대유희’라는 상설공연이 이곳에서 열렸다. ‘웃는 봄날의 연희’라는 제목이 붙은 협률사 공연이 올해 덕수궁에서 재현된다. 김덕수, 안숙선, 국수호 등 이 시대 제일의 명인들이 작지만 아름다운 이 무대를 빛내주고 있다.

서쪽에 있는 궁궐이라는 의미로 ‘서궐’이라 불린 경희궁은 여러 임금이 즉위하고 머무른 중요한 궁이었다. 하지만 1907년부터 일제가 경희궁에 학교를 세우면서 궁내 주요 건물들이 철거됐고 한동안 잊혔다. 1988년부터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인 경희궁이 축전기간 새로운 축제의 공간이 돼 어린이와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이들은 조선의 격구, 활쏘기, 검술, 마상무예 등의 무예실기와 강서(구술시험)로 이루어진 과거시험을 본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궁궐에서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창덕궁은 건축물과 자연경관의 빼어난 조화로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아름다운 창덕궁의 은밀한 모습을 환한 달빛 아래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궁궐프로그램이다. 왕실 사람들만 거닐 수 있었던 바로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궁중문화축전은 조선왕조의 역사와 다양한 궁중문화들을 역사라는 씨줄과 동시대성이라는 날줄로 모아 “오늘의 궁”이라는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작업이다. 한 판 즐겁게 놀면서, 조선의 역사와 궁중의 문화를 알아 가게 되는 축제가 되기 위해, 오늘도 현장에서 뛰고 있다.

주재연 제5회 궁중문화축전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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