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에 대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을 처리하면서 25일부터 계속된 ‘동물 국회’ 활극이 일단락됐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과 욕설,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 자유한국당은 정부와 여당을 ‘좌파 독재’ ‘홍위병’이라 규정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 의원을 ‘독재자의 후예’ ‘도둑놈’이라 불렀다.
□ 영화로 치면 ‘19금’ 판정을 받았을 이런 장면들이 각종 뉴스 매체를 통해 5일 넘게 24시간 여과 없이 우리 시야에 쏟아져 들어왔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서 난투극이 벌어져 자녀들이 보지 않도록 하려면 잠시 신문을 치워 놓거나 TV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 뉴스는 보도전문채널과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24시간 우리를 따라다닌다. 불쾌한 뉴스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 달라진 미디어 환경 때문에 불쾌한 뉴스 피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무당파보다는 특정 정당 지지자들이 자기가 동조하는 정치 신념이나 정책이 터무니없이 공격받는 뉴스를 접할 때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런 뉴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정신 건강은 물론 혈압 상승, 근육통, 면역체계 약화 등 신체 건강에도 이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언론은 이런 스트레스성 질환을 ‘헤드라인(머리기사) 스트레스 장애’(headline stress disorder)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이 신종 스트레스 장애가 2016년 미 대선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 ‘헤드라인 스트레스 장애‘가 정식 질환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2016년 미국 심리학자 스티븐 스토즈니가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처음 사용한 이후 널리 사용된다. 미국심리학회는 2017년 정치가 미국인 57%에게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NBC 방송은 ‘뉴스 불안증’ 대처법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요약하면 △잠자기 전에 뉴스 보지 말기 △SNS로 전해진 뉴스에 댓글로 논쟁하지 말기 △SNS보다 사건을 균형 있게 보도하는 신문 읽기 등이다. 정치가 유권자 건강까지 위협하는 세상이 됐다. 과연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 궁금해진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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