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31>어린이 작가 전이수
‘영재발굴단’, ‘노키즈존’ 일기로 큰 화제
이달 다섯 번째 책 내는 제주의 소년작가
‘어린이 천재 작가’로 유명한 전이수 어린이를 4월 26일 제주에서 만났다. 뒤에 걸린 그림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그린 ‘떠오르는 꽃’이다. 이수는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하려고 머리를 기르고 있다. 제주=홍인기 기자

‘열한 살’ 옆에는 보통 ‘아이’라는 말이 어울릴 거다. 하지만, 이 열한 살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글과 그림으로 세상에 말을 건네는 작가, 벌써 네 권의 책을 냈고 이달엔 새 책이 나온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구독하는 사람은 무려 4만1,000명. 많은 어른들은 그의 짤막한 글에서 깨달음을 얻고 간다. “오늘도 배워가요.” “이 글이 위로가 되네요.” “계속 그 마음 잃지 마세요.”

얼마 전엔 ‘노키즈존’(아이의 출입을 금지 하는 곳)에 갔다가 쓴 일기가 파장을 일으켰다. 어른들은 놀랐다. “진짜 아이가 쓴 거 맞아?” “이 정도면 칼럼이지!” 그리고 궁금해했다. “대체 이 아이가 누구야?”

제주에 사는 전이수(11)는 어린이 작가다. 나무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면서 “내가 저 자그마한 곳에서 화 내고 짜증 냈던 게 되게 부끄러워진다”고 말하는 꼬마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수가 쓴 동화 세 권은 그래서 메시지가 명확하다. 여덟 살에 낸 첫 책 ‘꼬마악어 타코’는 “나무(자연)는 점점 적어지고 네모(빌딩)들은 점점 많아지고 높아”지는 현대사회를 경고한다. 신해철의 노래 ‘더 늦기 전에’를 듣고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걸어가는 늑대들’은 어른들에게 보내는 충고다. 가만히 앉아 리모컨만 누르며 살다가는 기계문명에 질식해 버릴 거라는.

‘새로운 가족’은 이수의 이야기다. 맏이인 이수에게는 남동생 하나와 여동생 둘이 있다. 그 중 셋째인 유정이는 발달장애가 있다. 2014년 11월 이수네 집으로 와 이제 만으로 여덟 살이 됐다.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면서 이수도, 이수의 동생들도, 부모도 무척 힘들었다. 지금도 이수 가족의 성장통은 계속 되고 있다. 이수는 유정이 때문에 “무척 조급했고 답답했던” 자기의 모습을 ‘새로운 가족’에 담았다. 그러니까 이 동화는 유정이를 통해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됐고, 또 사랑하게 된” 이수의 성장기다.

장사를 해보기도 했으니 경험도 웬만한 성인 못지 않다. 벼룩시장(플리마켓)에 첫 책을 들고 나간 것이다. 무려 1년 동안 1,000권을 팔았다. 울고 웃으며 사람을 배웠다는 게 진짜 소득이다. 이수를 만나기 전엔 천성을 거스르지 않고 키우는 부모를 만나, 자연 속에서 자라는 복 많은 영재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제주시에 있는 이수네 작업실 겸 배움터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돌담에 이수네 4남매가 자기 얼굴을 그려 걸어놓은 그림이 ‘여기예요’ 손짓했다. 마당에선 이수가 일어나자마자 밥도 주고 물도 주는 개 토토가 껑충껑충 뛰며 짖어댔고 한편에선 이수가 수없이 올랐을 나무들이 반겼다.

방에 들어서니 한쪽 벽면에 파랑이 넘실대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었다. 이수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그린 그림이었다. “커다란 파도가 세월호랑, 형, 누나들이랑, 또 가족들의 아픔, 그리고 기도하는 우리의 슬픔도 다 삼켜버렸어. 근데 그 아픔 속에서도 새로 피는 사랑은 꽃이 되어 다시 떠오를 거라고 생각했거든.” 파란 파도 사이로 꽃 세 송이가 보였다. 이수는 그림의 제목을 ‘떠오르는 꽃’이라고 붙였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이수의 까만 눈동자처럼 맑고 깊었다.

◇이수의 선택 “나 학교 그만 다닐래”
이수는 한글을 8세에 배웠다. 아이가 원할 때 가르치면 된다는 게 이수 엄마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글보다 그림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익숙했다. 제주=홍인기 기자
-이수는 일어나면 제일 먼저 뭐해요?

“토토(이수네가 키우는 보더콜리 개의 이름) 밥 줘.”

-그리고 나서는?

“물!”

-물 마셔요?

“토토 물~.”

-아, 토토를 엄청 사랑하는구나. 언제부터 키웠어요?

“토토가 엄마 젖 떼고 나서부터. 1년 반 정도 됐어.”

-토토 물 주고 나서는 뭐해?

“물 마셔. 그리고 아침 먹고. 아, 그 전에 한자 읽고.”

‘기자 이모’를 이수는 스스럼없이 대했다. 처음엔 이수에게 경어를 썼는데 이수는 “응”, “아니” 했다. 예삿말을 더 편하게 느끼나 싶어 바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반말 하는 사이가 됐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알고 지낸 지 오래 된 친구인 줄 알았을 거다. 존댓말의 함정을 깨달았다. 존대를 했다면, 벽이 생겼을 테니까.

알고 보니 이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녔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선 아이들이 교사에게도 별칭을 부르고 반말을 한다. 어른과 어린이라는 위계가 주는 엄숙함, 거기서 생기는 경계를 허물려는 취지다. 그 교육철학을 이수의 엄마, 아빠도 받아들인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이수는 초등학교 5학년 나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수업 시간표 대로 정해진 과목만 배우는 게 아니라 더 경험하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이다. 이수의 뜻을 존중해 그때부터 엄마, 아빠가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기계공학과를 나와 발전소에서 일하는 아빠 전기백(43)씨가 수학, 과학, 지구과학, 물리, 목공 등을, 미술교육을 전공한 엄마 김나윤(43)씨는 영어, 한자, 책이나 영상을 보고 생각 나누기 등을 가르친다.

-그림은 매일 그려?

“빠뜨리는 날도 있어. 나는 그림만 하는 게 아니라 만들기도 엄청 좋아해. 목공. 그래서 저기 (바로 옆방) 목공실이 있어. 나는 예전부터 뭔가 만들기를 좋아했어.”

-최근에는 목공으로 뭘 만들었어?

“내가 보여줄게.”

이수가 후다닥 달려가서 뭔가를 가져왔다. 나무를 깎아 만든, 손가락 만한 사람이었다.

이수가 만든 나무 사람. 표면이 만지기 좋게 잘 다듬어졌다. 제주=김지은 기자
-기계 다루는 거 어렵지 않아?

“예전에 대안학교 다닐 때는 전기톱이나 전동드릴은 어리니까 아직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아빠는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가르쳐줘. 너무 위험한 건 나중에 하라고 하고. 아빠는 뭐든지 해보는 게 좋다고 경험해보라고 해. (그렇게) 조금씩 더 많은 기계들을 다루게 됐고 목공실에 있는 거는 거의 다 할 수 있어.”

-목공 하면 좋아?

“응.”

-왜?

“이것도 나의 하나의 기록이잖아.”

이수가 나무 사람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듯 건드리며 말했다.

-이수는 기록을 많이 남기면서 사는구나.

“응. (미소) 그리고 어제는 불태웠거든. 목공실에서 쓰고 남은 나무 쪼가리들을 모아서 깡통에 불태웠어. 그 나무 숯으로 벽에다가 그림을 그렸어.”

-이수는 왜 학교 그만 다니겠다고 했어?

“학교에는 다른 친구들이 많으니까. 그래서 수업이 딱 시간대로 정해져 있잖아. 그런데 나는 당장 목공 같은 걸 하고 싶은데 못하니까.”

-답답했구나.

“응.”

◇신해철의 ‘더 늦기 전에’ 듣고 쓴 첫 동화
이수의 글 중에는 엄마에 관한 것이 많다. “엄마라는 이름은 나라는 생명을 빚어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게 비춰준다”고 쓴 대목에서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배경의 그림은 동생 우태의 작품. 제주=홍인기 기자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어?

“그건 잘 모르겠는데, 너무 예전이라서. 음, 예전에 자고 있는 엄마 발등에 네임펜으로 악어 그렸던 게 있어.”

-엄마가 일어나서 뭐라고 했어?

“엄마는 내가 커서 보면 좋겠다고 그랬어. 그래서 문신했어.”

이수 엄마의 기억에 따르면, 이수가 다섯 살 때였다. 이수는 첫 동화의 주인공도 악어로 했다.

-‘꼬마악어 타코’는 이수가 쓴 첫 동화잖아. 그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게 됐어?

“신해철 아저씨의 ‘더 늦기 전에’라는 노래를 들었어. 그 아저씨가 자연을 아끼자는 노래를 만들었더라구. 나도 그 메시지를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었어.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더니, 글부터 써보라고 해서 먼저 글을 쓰고, 그림도 같이 그린 거야. 그걸 아빠가 책으로 만들어 줬어.”

‘더 늦기 전에’의 가사는 대략 이렇다. ‘공장 굴뚝의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내일의 꿈이 흐린 하늘로 흩어지네, 하늘 끝까지 뻗은 회색빌딩숲 이것이 우리가 원한 전부인가…’

-그 노래를 듣고 가사가 들어온 거구나.

“응. 가사가 좋아서, 다.”

이수는 글에 맞는 그림까지 그려 완성했다. 아직 한글을 완전히 떼지 못한 때라 기역(ㄱ)이나, 쌍디귿(ㄸ)의 좌우를 바꿔서 쓰기도 했다. 이 동화를 본 이수의 아빠가 기념해 책으로 내자고 했다. 10권만 만들자고 했던 것이 1,000권이 됐다. 출판은 본래 많이 찍을수록 값이 싸진다. 이수 엄마의 표현을 빌리면, 그렇게 용감히 1,000권을 찍어 집에 쟁여놓았다. 거기서 그쳤으면 이 얘기가 재미가 없었을 텐데 이수는 예상을 넘는 아이다. 어느 날 엄마,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 플리마켓에 갖고 가서 팔래.”

여덟 살 이수는 매주 주말에 장터에 섰다. 이수의 의지가 있었던 데다, 기부하는 습관, 경제 관념, 사람 공부를 할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게 이수 부모가 책 장사를 허락한 이유였다. 책을 판 돈은 나눠서 기부, 저축, 재료값에 쓰기로 했다. 이수에게 힘들 거라고 예고를 해주긴 했지만, 현실은 그 이상이었다. 옆에서 지켜 봤던 이수 엄마는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수 플리마켓에서 책 팔아봤다면서. 어땠어?

“힘들었어. 되게, 힘들었어.”

-어떤 게 힘들었어?

“마음이 힘들었어.”

-사람들 때문에?

“응. 나한테 뭐라고 해서…”

◇비웃음에도 1년 책 장사로 이수가 얻은 것
이수의 책들이다. 동화 세 권, 가족을 바라보는 이수의 마음을 표현한 ‘그림 에세이’까지 네 권을 냈다. 표지도 모두 이수의 그림이다. 김지은 기자

이수는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이수 엄마에게 당시 기억을 몇 토막 들었다. 눈부시게 따가운 햇볕도 고역이었지만, 이수를 가장 아프게 한 건 사람들이었다. “책 한 번 보고 가세요, 내가 쓴 책이에요”라고 외치는 이수한테 “니가? 책을?”이라며 무시하거나 책값 1만원을 두고 “비싸!”라며 비웃는 어른들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수는 책을 계속 팔았지?

“응.”

-얼마 동안이나 팔았어?

“1년 동안.”

-1년이나? 어떻게 견뎠어. 나 같으면 비아냥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서 당장 때려 쳤을지도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수는 어떻게 1년이나 할 수 있었어?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니까, 책을 팔아서.”

이수 엄마는 “이수가 1년 동안 1,000권을 다 팔았다”고 귀띔했다. 사실 이수가 상처 받는 게 싫어서 엄마는 그만 하기를 바랐지만 이수는 달랐다. 그때 이수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을 집에 잔뜩 쌓아두고 있으면 내가 저것을 볼 때마다 미안해질 거야. 난 하나도 안 힘들어. 상처도 안 받아. 사람들은 다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까.”

-하루에 보통 얼마나 팔았어?

“20권 넘게 팔 때도 있고, 5권 밖에 못 판 날도 있었어.”

-1권도 못 판 날도 있었어?

“응. 50권 넘게 판 날도 있었고. (웃음)”

-우와, 대단하다. 1권도 못 판 날은 기분이 어땠어.

“되게… 침울했어.”

-50권이나 판 날은?

“날라가는(날아가는) 줄 알았어! 하하하.”

-1,000권을 다 팔고 났을 때도 좋았겠다. 힘든데도 그만 두지 않았잖아.

“그때도 날라갈 만큼 좋았어!”

-1년 동안 팔면서 이수도 뭔가 달라졌겠다.

“마음이 좀 더 큰 거 같아.”

-두 번째 책 얘기도 해보자. ‘걸어가는 늑대들’에서 사람을 오름으로 표현했잖아. 왜 그랬어?

“사람들이 점점 기계에만 기대다 보면 엄청 살찌고 엄청 커질 거라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그래서 고구마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여기가 제주도잖아. 언젠가 오름에 올라갔는데 오름을 보니까 갑자기 그 생각이 났어.”

-사람이 저렇게 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응. 고구마는 너무 작잖아.”

갑자기 이수가 말했다.

“나는 (동화 세 권 중에) ‘걸어가는 늑대들’이 제일 좋아. 마음에 들어.”

-왜?

“(다른 책보다) 색칠이 많이 안 돼있잖아. 거의 스케치로 돼있잖아. 다른 것들보다 눈에도 잘 안 띄고. 하지만 ‘걸어가는 늑대들’이 의미도 좋고 그래서.”

-색칠이 안 돼있으니까 사람들이 더 상상하면서 볼 수 있다는 뜻이야?

“음,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표지에도 색칠이 안 돼 있어서 눈에 잘 안 띄지만, 색칠을 해야 꼭 좋은 건 아니잖아.”

나중에 이수 엄마에게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됐다. 이수가 평소에 “화려한 꽃보다 들에 핀 들꽃이 더 좋다”고 하더란 것이다. “엄마, 사람들은 너무 화려한 것만 좋아해. 화려하지 않은 것에 화려한 게 숨어있는데 그걸 모르는 거 같아.”

◇발달장애 동생한테 배우다
이수에게는 자연이 놀이터이자 배움터다. 개 토토(사진)에게 아침 밥을 주고, 마당의 꽃에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제주=홍인기 기자
-‘새로운 가족’은 이수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지?

“응. 그런데 사람들이 내 셋째 동생, 유정이, 입양해온 유정이 얘기일 거라고 많이 생각하는데 유정이를 데리고 와서 힘들었던 내 이야기야.”

-유정이 때문에 처음에 힘들었어?

“유정이가 좀 소리도 지르고, 조금 엉뚱한 행동을 하고, 그리고 말해도 잘못 알아듣고 그래 가지고 답답했었어.”

유정이는 제주로 이주한 뒤 이수 엄마가 봉사활동을 나가던 보육원에 있던 발달장애아였다. 유난히 마음 쓰이고 눈에 밟히던 그 아이가 어느 날 육지의 연고도 없는 장애인시설로 보내질 거라는 얘기를 듣고, 이수 엄마의 마음이 더 저려왔다. 그 얘기를 들은 이수 아빠가 입양을 하자고 제안했고, 아이들의 의견까지 물은 끝에 가족이 된 것이다.

이수는 유정이 때문에 “조금” 힘들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더 심각한 사건들이 많았다. 유정이가 이수 바로 아래인 우태를 찻길로 밀어 차에 깔릴 뻔한 일, 안마하는 나무 망치로 우태의 머리를 내려쳐 응급실에 실려간 일, 밥 먹을 때마다 접시를 밀어 깨뜨리는 바람에 막내 유담이 발바닥에 유리 파편들이 박힌 일, 이수의 첫 책 원화를 검정 크레파스로 칠해버려 망친 일…….

이수는 그런데 ‘새로운 가족’에서 유정이 때문에 짜증 내고 화를 냈던 자신을 반성했다. “데려온 동생도 나처럼 힘들었겠구나.”

요즘도 유정이는 사고를 친다. 하지만 이수는 유정이가 아닌 자신과 싸운다. 최근에 이수가 이런 일기를 썼다. 이수가 글을 써둔 공책에 유정이가 목공용 본드를 붓고 모래를 뿌리는 현장을 목격하고서다. 표지도 사포로 밀어 너덜너덜 해졌다. 그날 이수는 “내 마음이 사포질 된 것처럼 따갑고 아프다. 1년 동안 나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어서 마음이 괴롭다. 오늘 나의 마음엔 구름이 끼어있다. 아직도 비가 내릴락말락 한다.”

그리곤 이렇게 끝을 맺었다. “아직 슬퍼하는 것은 내가 그 노트를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정이 학교 갈 때 이수도 엄마랑 함께 데려다 준다며?

“응. 그런데 지금은 유정이 엄청 좋아졌어. 혼자서도 학교 가. 말도 엄청 잘해.”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을 읽고 뭘 느꼈으면 좋겠어?

“가족의 소중함!”

-이수한테 가족은 뭐야?

“나한테 가족은 나무 같은 존재야.”

-나무?

“응! 왜냐면 나무는 자연을 숨 쉬게 해주잖아. 먹을 거리도 주고 우리가 뛰어 놀 수 있는 터전도 주잖아. 가족이 그런 거 같아. 누군가가 아플 때 그 아픔을 나도 함께 할 수 있으면 한사람이 될 수 있어.”

-이수는 제주에 살아서 좋아?

“응. 자연이랑 함께 할 수 있으니까. 도시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도시는 어떤데?

“숲이 많이 없잖아. 근데 제주도는 조금만 가면 숲도 있고 흙을 만질 수도 있고 나무에 오를 수도 있잖아.”

-나무 오르는 거 좋아해?

“응.”

-오르면 어떤 기분이 들어?

“음… 음... 편안해! 그리고 사람들이 조그만 하게 보이잖아. 내가 저 조그마한 곳에서 화내고 짜증냈던 게 되게 부끄러웠어.”

-이수는 언제 행복해?

“음, 가족이 행복할 때.”

-어떤 때 가족이 행복하다는 걸 느껴?

“다 웃고, 느낌도 평화로울 때.”

-이수가 네 번째 책 ‘나의 가족, 사랑하나요?’에 이렇게 썼잖아. ‘행복은 내가 얼마만큼 사랑을 받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만큼 사랑을 주느냐에 달려있다’고. 이걸 어떻게 깨닫게 됐어?

“음, 유정이랑 지내면서. 유정이가 힘들게 할 때 내가 짜증을 내면 내가 더 불행해지니까. 그래서 유정이한테 더 잘해주니까 나도 기분이 좋았어.”

◇“왜 아이는 식당에 들어갈 수 없나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이수의 일기. 동생 우태의 생일날 ‘노키즈존’ 레스토랑에 갔다가 쫓겨난 일화를 소재로 썼다.

이수가 유명해진 건 SBS ‘영재발굴단’에 소개되면서다. 최근에는 지난해 11월에 쓴 ‘노키즈존’ 일기가 뒤늦게 퍼지면서 더 알려졌다. 페이스북이 이수의 글로 들썩였다. 동생 우태의 생일이어서 그렇게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갔지만, 노키즈존으로 바뀌어서 들어가지 못한 날 쓴 것이다. 이수는 글에서 “나는 생각한다. 어른들이 편히 있고 싶어하는 그 권리보다,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이라고 썼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나오는 대사 “아빠! 왜 개와 유대인들은 가게에 들어갈 수 없어요?”를 인용해서.

-그 글은 어떻게 쓰게 됐어?

“어른들만 들어갈 수 있고 아이들은 못 들어 간다는 게 이상해서. 지금도 이상해.”

-노키즈존이 뭔지 알았어?

“그때 처음 알았어.”

-이수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거보다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야?

“음, 지금!”

-왜?

“왜냐면, 지금이 소중하니까.”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거야?

“응.”

-왜?

“재밌어. 말하는 거보다 글 쓰는 게 더 편해.”

-하고 싶은 말 있어?

“사랑해요, 고마워요.”

-내가 고마워?

“응.”

-왜?

“음, 나 위해서 해주는 거잖아.”

-이수는 나쁜 사람도 사랑해?

“뭐가 나쁜 건데?”

예상치 못한 반문에 잠시 당황했다.

-플리마켓에서 이수가 책 팔 때 이수를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잖아.

“그건 나쁜 게 아니잖아. 나쁜 기준이 뭔데? 음, 나쁜 건 없는 거 같아.”

‘나쁘다는 건 뭘까’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수도 나중에 어른이 될 테지만, 지금 어른들을 보면 어때?

“조금, 이상해. 계속 휴대폰만 봐.”

-그럼 뭘 해야 해?

“휴대폰 안 보고도 볼 게 얼마나 많은데. 바깥 풍경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이랑 얘기도 할 수 있잖아.”

-그렇지. 담에다 이수가 쓴 글을 보니까 꽃이 말을 건다는 게 있더라. 오늘 아침에는 꽃한테 뭐라고 했어?

“안 춥냐고.”

-그랬더니 꽃이 뭐라고 해?

“음, 많이 떨었어.”

그렇게 꽃과도 대화할 수 있는데 휴대폰에 늘 코 박고 있는 어른들이 이상했던 거다.

◇이수가 말하는 ‘행복이란’
나무 위는 이수가 좋아하는 ‘아지트’다. 제주=홍인기 기자
-이수는 장래희망 같은 거 생각해본 적 있어?

“음, 내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한 일!”

-도가 무슨 말인지 알아? 도리.

“응!”

-그럼 이수가 살면서 지키려고 하는 도리 같은 게 있어?

“빈 배.”

-응?

“있잖아. 오쇼 (라즈니쉬) 책에 ‘빈 배’가 나와. 엄마가 읽어줬는데, 이런 거야. 어떤 사람이 배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다른 배가 와서 부딪히면 그 사람이 다른 배에 타 있는 사람한테 화를 낼 거 아니야. 운전 좀 잘 하라고. 근데 배에 아무도 없으면 화를 낼 리가 없잖아. 화 날 때도 빈 배를 생각하려고 해.”

-대단하구나. 잘 돼?

“음… 잘 안돼. 그래서 지키려고 하는 거야.”

이수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이수 엄마가 올해 3월에 낸 산문집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이것이 여덟 살 아이와 할 수 있는 대화인가 싶지만.” 이수와 나눈 얘기를 옮기면서다. 이수와 인터뷰를 하는 심정이 꼭 그랬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이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거기다 오쇼 라즈니쉬의 ‘빈 배’에 담긴 철학까지 나오다니.

인터뷰를 하고 나서 그런 얘기를 하니 이수 엄마가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이수 같은 경험을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수에게 아픈 기억이 더 있었다. 이수가 어릴 때 다닌 어린이집에서 사달이 난 거다. 부모들에게는 그렇게 선하고 친절했던 어린이집 교사가 뒤로는 아이들을 때리고 있었다. 이후 그래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후유증은 2년이나 지속됐다. 이수가 이유 없이 발을 동동 구르거나, 바닥을 치면서 울고, 화를 낼 때마다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런 상처가 있었는데도 이수는 “행복은 사랑을 줄 때 오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쳤다.

윌리엄 워즈워드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아이를 낮춰 부르지 않고 존중하는 의미를 담아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이수와 얘기를 하면서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어린이, 마음의 스승을 다시 만났다.

이수(맨 왼쪽)와 이수 엄마 김나윤씨(가운데), 동생 우태가 나란히 섰다. 이수네는 다음달 작업실로 쓰는 집 앞에 ‘전이수카페갤러리’를 연다. 이수의 그림도 걸어두고, 이수의 작품으로 만든 캐릭터 상품도 팔 예정이다. 차도 마실 수 있다. 수익의 일부는 제주의 미혼모 시설과 태국의 버마 난민학교, 아프리카 어린이 지원에 쓸 계획이다. 제주=홍인기 기자

제주=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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