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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5일 한국은행이 우리나라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직전 분기보다 0.3% 감소했다고 발표했을 때 예상 밖의 저조한 수치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엿새 전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할 때 이러한 역성장을 예측해 반영했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한은은 상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자그마치 0.3%포인트(2.5→2.2%) 낮췄는데, 이마저 1분기 성장률 급락이 반영되지 않은 거라면?

한은 측 답변은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였다. 주로 정부지출과 민간소비, 설비투자에 대한 예측이 빗나갔다고 했다. 정부가 발표한 재정집행률(1분기 32.3%) 상으론 역대 최고 속도로 재정이 집행됐지만, 막상 국고에서 인출된 예산은 아직 첫삽을 뜰 준비가 안 된 재정사업 현장에 쌓여 있어 정부지출로 반영되지 않았다. 주문된 자동차의 인도 지연은 민간소비를 깎아내렸다. 국산은 현대차의 노사협상 지연, 수입산은 독일제가 글로벌 배기가스 규제의 높아진 문턱에 걸린 탓이 컸다. 외환위기 이래 최악의 감소폭(-10.8%)을 기록한 설비투자는 반도체 업황 악화라는 대형 악재뿐 아니라 운수장비 투자 부진이란 복병까지 덮쳤다. 특히 꾸준하던 항공기 수입이 1분기에 크게 줄었다.

한은은 그러나 연간(2.5%)은 물론이고 상반기 성장률 전망치도 낮출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1분기 성장률을 끌어내린 주요인 중 상당수가 경기와 무관한 일시적 요인이란 판단에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정부지출은 밀렸던 재정사업이 집행되면 늘어날 것이고, 주문한 자동차는 늦더라도 결국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항공기 수입 역시 저비용항공사 신설에 맞춰 늘어날 거란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상반기 2.2% 성장 전망에 부합하려면 2분기 성장률이 1%대 중반이어야 한다”면서도 “달성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틀린 얘기가 아닐 것이다. ‘성장 요인이 사라진 게 아니라 지연됐을 뿐’이란 논리엔 큰 하자가 없어 보이고, 경제전망 부문에서 한은이 보유한 전문성을 턱없이 의심할 필요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일시적 요인이 ‘우연히’ 몇 건 중첩되는 것만으로도 성장세가 금융위기 수준으로 곤두박질칠 만큼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허약하다는 사실이다. 때가 되면 발표되는 경제지표의 등락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중장기적인 지표의 흐름에 보다 주목하며 경제의 근력을 기르는 방책 마련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경제 백년지계 논의는 좀처럼 단편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분기 성장률 쇼크 이후 정책당국 수장들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입을 맞춘 듯 내놓은 해법은 민간투자 활성화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가 동반 감소하는 현실에 비춰 합당한 지적이다. 문제는 민간투자를 늘릴 구체적 방도에 대한 논의가 늘상 정부의 정책적 책임(특히 규제 완화)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 민간기업의 투자 감소가 대략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만성적 현상이라는 엄연한 사실은 진지하게 감안되지 않는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내부자금 중 투자 비중은 금융위기 전까지 7%대를 유지하다가 위기 이후 4%대로 하락한 반면, 현금 보유 비중은 해마다 늘어 2017년 현재 7.4%에 이르렀다. 더구나 계량분석 결과 기업투자 감소와 보유현금 증가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확장에 돈을 들이는 대신 금고에 현금을 쌓아두는 기업들의 오랜 선택이 온전히 정부 탓일까. 유보금으로 돈놀이하는 것 이상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시장을 찾을 수 없는(혹은 찾지 못하는) 기업의 어려움(혹은 무능력)에서 이유를 찾는 편이 합당한 건 아닐까. 기업을 향해 돈다발을 풀어 경제에 기여하라는 강요가 불합리한 것만큼이나, 기업이 투자할 마음이 내키도록 정부가 길을 닦으라는 요구 또한 우스꽝스럽다.

이훈성 경제부 차장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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