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이충재 칼럼] 그래도 웃는 자유한국당

입력
2019.04.29 18:00
수정
2019.04.29 23:58
30면
0 0

패스트트랙 지정됐어도 득이 크다는 계산

투쟁력 회복으로 ‘보수대통합’ 기정사실화

자성ㆍ개혁 없이 탄핵前 돌아가면 그만인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헌법수호!” “독재타도!”란 구호를 자유한국당 의원들로부터 듣게 될 줄은 몰랐다. 1987년 6ㆍ10 민주화항쟁 때 시민들이 외쳤던 “호헌철폐” “독재타도”가 연상돼서다. 전두환 정권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을 모태로 하고,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 탄핵사태의 책임이 있는 한국당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둘째 치고, 80년대 운동권이라면 치를 떠는 정당이 오죽하면 그들의 구호를 그대로 따라 할까 싶다. 심지어 지난달 전두환씨가 광주지법에 출두한 날 인근 초등학생들이 불러 유명해진 과거 대학가의 데모가 ‘훌라송’을 부르는 한국당 의원들도 있었다. 이쯤 되면 누가 진짜 운동권 출신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법하다.

가까스로 30일 새벽 통과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 안건) 지정에 대한 한국당의 육탄 저지를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라며 의아해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 의석 수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서라지만 민주당도 그 못지않다. 게임이 끝난 것도 아니어서 얼마든지 추후 협상을 통해 수정할 여지가 있다. 선거법 개정에 호의적이지 않다가 여론에 떠밀리다시피 온 민주당을 보면 협상 여하에 따라 막판에 ‘민주한국당’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공수처법은 핵심 수사 대상인 국회의원이 빠져 한국당이 표적이 될 일도 없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한국당이 자신들이 주도한 국회선진화법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까지 사생결단에 나섰던 데는 ‘깊은 뜻’이 있다.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성과물을 문재인 정권에 주지 않겠다는 게 첫 번째다. 선거개혁이니 권력기관 개혁이니 하며 업적으로 내세워 총선과 대선에 써먹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다. 완전히 ‘개혁 맹탕’ 정권으로 만들어야 한국당이 선거에 유리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난장판 국회’를 자초했다는 비판에도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돼 온 ‘웰빙 정당’ 이미지에서 벗어나 투쟁력을 회복한 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만큼 값지다고 한국당은 여길 것이다. 당장 예상을 깨고 지지율이 오르는 등 보수 진영에서 열띤 지지가 쏟아지고 있다. 현 지도부를 비판해 왔던 홍준표 전 대표도 “탄핵 때 저렇게 하나가 되어 투쟁했다면 나라가 이 꼴이 되었을까. 늦었지만 지도부가 더 가열찬 투쟁을 해달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한국당이 주말마다 도심 집회를 열기로 한 것은 그만큼 자신감을 얻었다는 신호다.

지지층 결집으로 황교안 대표가 갈망하던 ‘보수 대통합’의 꿈도 가까워졌다. 이번 사태로 바른미래당이 분당 국면으로 치달은 것은 한국당이 이미 계산에 넣었을 터다. 전투력을 되찾은 한국당의 강한 구심력에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황 대표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추종세력으로부터 호의를 얻음으로써 대한애국당과의 통합은 무르익어가고 있다. 한국당 주말 집회에는 이 당의 주축인 태극기 부대가 대거 참여해 “한국당과 합쳐야 한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국당이 탄핵 이전의 완전체로 복귀하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는가. ‘촛불혁명’과 탄핵 사태를 거치며 국민들이 원한 것은 ‘보수 개혁’과 ‘정의로운 국가 건설’이었다. 국가와 사회 개혁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진보 집권세력의 무능과 무책임은 당연히 비판받아야겠지만 거대 보수 정당이 아무런 자성과 혁신 없이 다시 몸집만 커지는 것은 역사적 퇴행이다. 인적 청산과 보수가치 재정립은 외면하고 오로지 ‘반(反) 문재인’에만 의존하면 당장은 버틸지 모르나 언젠가는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한국당은 이번 패스트트랙 사태로 총선 승리가 눈앞에 보인다고 기뻐하는 듯하나 착각일 뿐이다. 승자 독식의 양당 체제를 완화하는 선거제 개편과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공수처 설치는 촛불시민의 최소한의 요구다. 역사 의식과 책임이 결여된 보수의 반동적 행태를 유권자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