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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선샤인 광산 참사와 그 이후(5.2)

입력
2019.05.0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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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명의 비석 앞에 건립된 4m 높이의 동상. 안전모 불빛이 선샤인 광산 참사 현장을 영구히 비추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visitnorthidaho.com
91명의 비석 앞에 건립된 4m 높이의 동상. 안전모 불빛이 선샤인 광산 참사 현장을 영구히 비추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visitnorthidaho.com

미국 동북단 워싱턴주의 도시 스포캔(Spokane)을 지나 아이다호로 접어들면 평원은 끝이 나고 완연한 산악 지형이 시작된다. 코어 드얼린(Coeur d’Alene) 호수와 광막한 국유림 지대를 따라 펼쳐진 그 산악 벨트가 북미 최대의 은광 산지다. 거기에 1884년 개발돼 2001년 문을 닫은 세계 최대 은광 중 하나인 ‘선샤인 광산(Sunshine Mine)’이 있다.

생산량이 기록으로 남은 1904년부터 폐광되기까지 98년 동안 선샤인 광산 광부들은 1,290여만톤의 원석을 채광, 은 3억6,489온스(1만340여톤)를 생산했다. 1998년 이후 원석 1톤 당 평균 약 23.3온스의 순은을 채취, 품질 면에서도 무척 양질의 광산이었다고 한다.

1972년 5월 2일 선샤인 광산 지하 약 950m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광부 두 명이 갱내 전기 수급시설 인근에서 유독성 연기를 감지한 것은 오전 11시40분 무렵이었다. 당시 갱도에는 낮 근무조 173명이 작업 중이었다. 탄광 관리실은 20여분 뒤 전원 대피를 지시했으나 무거운 일산화탄소가 갱도를 채우면서 순식간에 91명이 숨졌다. 미국 탄광 참사 역사상 최악의 사태였다.

선샤인 광산 참사로 미국 산업 전반의 안전대책이 대폭 강화됐다. 광업안전보건국이 신설돼 안전 예방 훈련 매뉴얼을 만들었고, 긴급 피난 및 환기 시스템을 개선했다. 응급 호흡기 등 개인 안전장비 휴대도 의무화됐고, 77년 ‘광업(금속ㆍ비금속) 보건 안전법’이 제정됐다.

공허한 헌사인지 모르겠으나 미국인에게 광부는, 적어도 공적으로는 경제 성장 원년의 희생적 주역으로 존경받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01년 제작한 선샤인 참사 70분 다큐멘터리 제목은 ‘You Are My Sunshine’이었다.

2006년 출간된, 선샤인 광산 참사 논픽션 ‘더 딥 다크(The Deep Dark)’에 따르면 당시 선샤인 광산은 꽤 충실한 안전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석탄광과 달리 불연성 암석 위주여서 화재 가능성은 거의 무시됐다고 한다. 당시 광업국은 채굴한 공간을 채운 폐목에 불씨가 튀어 자연 발화한 것으로 추정했다.

선샤인 광산은 7개월 뒤 작업을 재개했다가 은 시세 하락에 따른 채산성 상실 등 몇 가지 요소가 겹쳐 2001년 폐광됐다. 현재 거기에 약 2,600만온스(약 73톤)의 은이 매장돼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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