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6> 치매자산가 ‘사기 결혼’ 사건
친족상도례란 친족 간 재산 범죄 처벌을 면제하는 형법상 특례 조항을 의미한다. 권리행사 방해죄에 대해 형법 제328조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사기ㆍ공갈ㆍ절도ㆍ횡령ㆍ배임 등에도 준용돼 재산범죄 전반으로 확대 적용된다.
형법 제정 당시 친족상도례 조항이 만들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재산 소유 단위는 가족 전체로 간주한 당대의 재산 관념이 반영됐다. 남편 돈이 아내나 자식에게 가도 가족 전체 재산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 ‘집안 문제에 법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적용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모(65)씨처럼 A씨 재산을 빼돌리고 처벌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몰래 혼인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범 죄에 악용할 경우다.
실제로 이씨 사건을 수사하는데 친족상도례 조항은 장애물로 작용했다. 수사를 맡았던 경기남부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이홍필 경위는 “당시 A씨 가족은 여러 수사기관이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이씨를 고소하려 했으나 친족상도례 조항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낙심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수사팀도 친족상도례 조항 때문에 고소장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 내사를 통해 정보를 모아야 했다. 친족상도례 조항을 우회하기 위해 이씨가 A씨에 대해 주변에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수집, 결혼 자체가 무효라는 점을 입증해야 했다. 수사가 한참 빙 둘러간 셈이다.
이미 법 전문가들 사이에선 개개인을 인정하기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묶어버리는, 시대에 맞지 않는 친족상도례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족 간 재산 문제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에 진작 고쳤어야 할 조항”이라며 “적어도 피해자 본인이나 친족들에게 고소할 수 있는 기회는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결정 능력이 온전치 못한 노인에게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하는 성년후견인제도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전반적인 고령화 추세 때문에 A씨 사건 같은 것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법원이 감독하는 후견인 제도를 통해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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