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유대인들이 세계 망친다”며 총격… 1명 사망
트럼프 “반유대주의 타도” 외치면서도 인종차별 언행
지난달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모스크) 총기테러, 이달 21일 스리랑카 부활절 연쇄 폭탄테러에 이어 다시 한번 특정 종교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발생했다. 이번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파웨이에 위치한 유대교 회당이 총기 난사의 표적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反)유대주의ㆍ백인우월주의 성향을 보인 테러범의 행각을 ‘증오범죄’로 규정하고 강력 규탄했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증오범죄의 근간에 무슬림 등을 향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즈(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유월절(逾越節ㆍ유대교 최대 명절) 마지막 날인 27일(현지시간) 오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북쪽으로 32㎞ 정도 떨어진 파웨이의 유대교 회당에 백인 남성 존 어니스트(19)가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어니스트의 총격으로 네 명이 총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 중 60세 여성이 사망했다. 랍비(유대교 성직자)를 포함한 부상자 세 명은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당국은 당시 회당 안에 100여명이 모여있었지만 어니스트가 지닌 AR-15 자동소총이 몇 발이 발사된 뒤 오작동을 일으켜 더 심각한 인명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회당 안에 있던 국경순찰대원이 어니스트에게 대응 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범행 직후 차량을 타고 달아난 어니스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캘리포니아주 고속도로 순찰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본인의 위치를 알리고 차를 세운 뒤 순순히 투항했다.
미 당국은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규정하고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어니스트는 총격 당시 “유대인들이 세계를 망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 당일 온라인에 게재한 것으로 보이는 선언문에서 스스로를 ‘반유대주의자이자 백인우월주의자’로 칭하고 “유대인들이 설계한 내 인종(백인)의 불행한 운명을 막기 위해 천 번이고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뉴질랜드 모스크 테러범인 브렌턴 태런트와 지난해 10월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교 회당에서 총기를 난사해 11명을 숨지게 한 테러범 로버트 바우어스를 예수 그리스도,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자신의 롤모델로 꼽았다. 이번 총격 사건은 유대교 회당을 대상으로 삼은 피츠버그 사건 이후 정확히 6개월만에 발생했다.
어니스트는 온라인 선언문에서 본인의 또 다른 증오범죄를 실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캘리포니아주 에스콘디도에서 발생한 모스크 방화 사건을 본인이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해당 범행을 “뉴질랜드 테러범 태런트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는 태런트와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을 통해 테러를 생중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를 극우사이트에 공유했지만 해당 계정이 차단되면서 뜻을 이루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유대 정책을 펼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 사고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면서 “이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증오범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우리나라 전체가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부상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유대인 사회와 연대하고 있다”며 “우리는 반유대주의와 증오를 강력하게 비난하며 이는 반드시 타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잇따르는 증오범죄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민주당 소속 무슬림 여성인 일한 오마르(미네소타) 하원의원에게 맹폭을 이어가는 등 특정 종교와 인종에 차별적인 언행을 일삼아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이날 미국프로풋볼(NFL)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흑인 선수 카일러 머리를 건너뛰고 2순위 백인 선수 닉 보사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 빈축을 샀다. 게다가 보사는 과거 인종차별이나 성 소수자 비하 발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논란이 됐던 선수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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