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대기업이 임원 퇴직금에 대해 승수(乘數)를 적용한다. 기업마다 편차가 있으나 한 대기업의 예를 들면 퇴직금 승수는 상무 2, 전무 3, 부사장 4, 사장은 5다. 한 달 치 월급에 재직연 수, 여기에 승수를 곱해 퇴직금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사장이 퇴직할 때까지 상무 2년, 전무 2년, 부사장 3년, 사장 2년을 역임했다면 총 재직기간은 9년이지만, 퇴직금 산정 재직기간은 상무 4, 전무 6, 부사장 12, 사장 10년 등 총 32년이 된다.
□ 월급도 일반직보다 많은데 승수까지 곱하니 임원 퇴직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사주인 회장은 월급도 훨씬 많지만 승수도 높게 책정할 수 있다. 이사회에서 결정하거나 회사 정관에 정하기 나름이다. 회사를 여러 개 경영했다면 퇴직금은 몇 배가 된다. 최근 은퇴한 한 그룹 회장의 퇴직금이 수백억 원대가 되도록 하는 계산법이다. 사주 측근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이사회가 연봉과 퇴직금을 결정하는 구조라 가능하다.
□ 퇴직금만 그럴까.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미등기임원이라도 오너와 오너 가족들은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는 일에 비해 많이 버는 ‘살찐 고양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반면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은 전문 경영인에게만 지운다. 일은 머슴이 하고 책임은 마름이 지고 돈은 지주가 챙기는 ‘현대판 소작제’다.
□ 일을 하지 않지만 자산을 소유하거나 통제하면서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 불로소득(不勞所得)이다. 투자로 얻은 자본소득, 과다한 기업이익, 지적재산권 등이 포함된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설립자인 가이 스탠딩은 저서 ‘불로소득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에서 이 같은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일부 소수집단에 더 많은 소득이 집중되는 경제체제의 모순을 꼬집었다. 오래 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불로소득자의 안락사’를 언급하며 “불로소득자는 자본주의가 완성되면 곧 사라질 과도기적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로소득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오죽하면 국민연금이 투자기업 경영진의 과다한 보수에 대해 제동을 걸겠다고 나섰을까.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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