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정상회담의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비핵화에 상응하는 ‘안전보장’을 제공하란 것이다.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비핵화 대 안전보장이다. 사실 낯설지 않은 프레임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6ㆍ12 북미 정상회담 공동합의문을 통해 비핵화와 안전보장의 교환을 ‘굳건하고 흔들림 없는’ 것으로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간 부각시키지 않던 ‘안전보장’, 북한이 6ㆍ12 합의문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프레임 전략 차원에서 볼 수 있다. 비핵화에 상응하는 우선적 요구조건의 프레임을 설정하는 문제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10월 2일까지 4개월여 북한은 종전선언을 전면에 내세웠다. 6ㆍ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조속한 시일 내 종전선언’을 한다는 구두 약속을 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북미 신뢰의 증표이자 전쟁종식을 국제사회에 알려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기 위한 고리로 삼고 싶어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7월 6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3차 방북은 북한의 이런 계획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만 얘기했고 북한은 강도 같다는 말로 응수했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도 하지 못한 채 돌아온 폼페이오 장관은 7월 말부터 대북제재 추가 조치를 발동한다. 인도적 협력지원도 제한했다. 연말까지 7건의 추가조치, 124명의 제재인물 리스트가 발표됐다. 2017년보다 많은 수치다. 제재 압박으로 북한의 기를 꺾겠다는 작전이다. 종전선언의 문턱도 한껏 높였다.
제재로 답을 한 미국에 북한은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결국 북한은 종전선언에 ‘연연하지 않겠다’ 고 선언한다. 대북제재 해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까지 북한이 설정했던 비핵화 대 대북제재 해제 프레임 역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대북제재가 약점이란 인식을 강화하면서 오히려 미국의 제재 결정주의, 제재 만능주의가 강화되는 악수가 됐다. 북한의 협상 공간은 더욱 협소해졌다. 제재 해제에 목매는 모습은 북한의 내부적 절박성, 내부적 흔들림을 확신하도록 했다.
결국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을 통해 더 이상 대북제재 해제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제 초점은 ‘안전보장’일 가능성이 높다. 이 프레임 전환을 알리기 위해 북한은 러시아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을 빌려 ‘안전보장’을 미국과 한국에 발신한 것이다. 러시아, 푸틴이라는 반미적 ‘기호’, 하노이 이후 교착국면의 ‘타이밍’, 족쇄가 될 섣부른 합의문 없이 조용하지만 강력한 메시지 전달 등이 결합됐다. 북한의 절묘한 외교술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안전보장은 강력한 대응 무기다. 안전보장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측면이다. 국교수립, 적대시 정책 철회 등과 같은 외교적 안전보장, 제재해제나 경제협력·지원과 같은 경제적 안전보장도 중요하지만 안전보장의 핵심은 군사적 측면이다. 푸틴 대통령은 “비핵화는 북한의 군비축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시간대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제8회 모스크바 국제안보회의에서 “군사적 대치 상태를 제거하는 긍정적 조처들이 한반도 모든 영토에서 일어나야 한다”며 한미연합훈련과 군사장비 도입의 완전한 제거를 주장했다.
뒤돌아보면 북한은 종전선언, 대북제재 해제 프레임을 경유해 결국 안전보장으로 돌아온 셈이다. 상황은 심상치 않다. 안전보장은 북한의 전통적인 주장인 핵군축 논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소위 비핵화 대 핵우산 제거다. 대북제재 결정주의에 함몰된 미국에 대응하는 강력한 무기를 빼어든 것이다. 안전보장 카드, 연말 시한의 배수진은 북미협상 여지를 둔 것이기는 하지만 ‘장기전’을 대비한 모드임은 분명하다. 미국을 의무통과지점으로 하는 ‘비핵화’가 아닌 대안적 비핵화의 길, 북러 정상회담은 여러모로 많은 상상력을 제공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