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검찰의 칼,특수부 검사들
‘거악 척결’을 기치로 내건 한국 특별수사의 핵심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있다.열화와 같은 국민의 성원도 있었지만,정치 검찰화 논란을 빚다 2013년32년 만에 현판을 내렸다. 중수부의 역할을 넘겨받은 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다.한국 특별수사의 미래는 중앙지검 특수부에 달려 있다.
중앙지검 특수부는 중수부 폐지 이후 덩치를 크게 불렸다.중수부가 있던 시절,중앙지검 특수부는 3개 부로, 각 부당 부부장검사 1명에 평검사가 4~5명 정도 배치된 ‘원팀’이었다. 중수부 폐지 이후 특수부는 4개 부로 늘었을 뿐 아니라,각 부당 부부장검사를 1명 더 둬서 소속된 10여명의 검사를 두 개의 팀으로 나눴다.한 팀은 수사에,다른 한 팀은재판에 집중한다.수시와 기소 못지 않게 유죄 판결까지 책임지는 구조다.특수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1명의 검사의 수사와 공소유지를 동시에 하느라 ‘빈 곳’이 생기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지금은 팀 별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수사와 재판을 진행해서전문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실제 이 분업체제는 국정농단,그리고 사법농단 수사와 재판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앙지검 특수부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야당 인사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정권 방어막 수사등 첨예한 사건일수록 논란은 여전하다.과거사와 결별하겠다면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활발한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지만,지난 10년 사이 일어난 정권 유착형 수사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이 때문에 일본 특수부의 몰락을 눈여겨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경지검 특수부는 1976년 ‘록히드 뇌물 사건’으로 당시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의 리더였던 다나카 카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했다.1980년대 ‘리쿠르트 사건’, 1990년대 ‘사가와규빈 사건’ 수사는 정권을 주저앉혔다.하지만 일본 3대 특수부로 불리는 오사카지검에서2010년 증거조작 사건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후생노동성 국장 수사 과정에서 검사가 증거물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고 해당 검사는 물론,지휘라인도 실형을 선고받았다.주목할 점은 일본 검찰의 대응이다. 일본 검찰은 “개인 일탈”이라는 식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지 않았다.특수부 축소는 물론,모든 수사 과정에 대한비디오 녹화 명문화 등의 조치를 받아들였다.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이라 불리던 심재륜 전 고검장은 2009년 검찰 동우회 소식지에 후배 특수부검사들을 위해 ‘수사십결(搜査十訣)’이란 글을 쓰면서“칼은 찌르되, 비틀지는 마라”는 말을 남겼다.한국특수부 검사들은 과연 칼을 비틀지 않았는지 자문하고, 그에 대한 대답과 실질적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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