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성류굴 조사하던 연구소ㆍ공무원이 발견, 신라 정치ㆍ사회사 연구 중요 사료로 평가
천연 석회암 동굴인 경북 울진 성류굴에서 신라시대 화랑과 승려가 쓴 글씨가 무더기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컴컴한 동굴 속 1,200년 전 기록을 발견한 이는 (사)한국동굴연구소 이종희 연구실장과 울진군청문화재 담당 공무원인 심현용 학예사다. 지난달 21일 울진군청의 의뢰로 성류굴을 조사하던 이종희 실장이 곳곳에 한자로 적힌 글씨의 내용이 궁금해 심현용 학예사에게 해석을 요구했고, 두 사람은 우연히 내부를 들여다보다 신라 화랑과 승려가 남겨놓은 수십 개의 명문을 찾았다.
두 사람이 신라인의 많은 기록을 찾은 곳은 성류굴 내 30m 간격으로 이어지는 총 12개 광장 중에서 8번째 광장이었다. 거리로는 동굴 입구에서 약 230m 떨어진 지점이다.
심현용 학예사는 동굴 내 여러 낙서를 설명하던 중 인공조명이 아닌 한 줄기 햇빛이 새어 들어오자 “어디서 들어오는 빛이냐”고 물었고, “성류굴에 입구가 하나 더 있는데 거기서 들어오는 빛이다”는 이종희 실장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 동굴 바깥으로 발길을 돌렸다.
심현용 학예사는 성류굴로 통하는 제2의 문이 성인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쪽으로 발걸음 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굴 안 기둥과 벽면 곳곳에 한자로 된 글씨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고, ‘정원(貞元) 14년’이라는 연호를 나타내는 낙서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원이라는 연호는 당시 중국 당나라 9대 황제 덕종이 사용하던 연호 정원(785~805)을 딴 것으로, 정원 14년은 서기 798년 때인 신라 원성왕 14년을 나타냈다. 주변 종유석과 벽면에는 ‘정원 14년 무인년 8월 25일에 승려 범렴이 다녀가다(貞元十四年, 戊寅八月卄五日, 梵廉行)’라는 기록을 비롯해 화랑 임랑(林郞)과 공랑(共郞)의 이름, 병부사(兵府史)라는 관직명을 나타내는 명문까지 30여개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또 ‘105명의 화랑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105병’이라는 표시도 발견됐다.
심현용 학예사는 “때마침 들어 온 한줄기 빛과 비밀의 통로와 같은 제2입구를 가보지 않았다면 성류굴 속 1200년전 신라인의 기록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며 “신라 화랑 등의 이름이 새겨진 명문을 통해 김유신 장군이나 화랑의 동굴 수련은 더 이상 설화가 아닌 사실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성류굴은 고생대인 2억5,000만년 전 생성됐고, 입구 위쪽 바위부터 일반인에 공개하는 10번째 광장까지 곳곳이 낙서로 가득 차 있다. 한자와 영어, 십자가 모양까지 여러 형태의 낙서가 있는데다 겹쳐져 있기도 하고 손상된 곳도 많아 판독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제2입구에서 8호광장 구간의 글씨는 신라시대를 나타내는 연호가 함께 드러나 있어 신라의 화랑제도와 신라 정치ㆍ사회사 연구 등을 위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더구나 8번째 광장 인근에서는 신라시대 왕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도 발견됐다.
울진군 관계자는 “동굴 내부에서 신라인의 글씨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주민들도 신기해하고 문의 전화도 많다”며 “성류굴의 기록에 관심이 높아진 만큼 문화재청을 비롯해 정부 차원에서 하루 속히 전수 조사와 연구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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