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결혼하면, 내 부모와 아내가 모르는 사이로 지내게 할거야”

입력
2019.04.30 04:40
수정
2019.04.30 08:02
0 0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기성세대는 ‘나약한 세대’라 손가락질하지만 스스로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가는 세대’라 부르며 뿌듯해하죠. 고용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앞날을 마주해 비장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리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ㆍ198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한국일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잠재력, 그들이 미처 어필하지 못한 속내를 이해하고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본보 인턴기자들의 방담(放談)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을 연재(매주 화요일)합니다.


공부 잘하고 좋은 직장 취직해도

결혼 안 하면 자식 농사 실패 여겨

지긋지긋하다며 왜 강요하는지?

비혼도 진지한 고민의 결과물

타인의 삶에 무례하게 간섭 말길

 <2> 결혼관 

“난 결혼하면, 부모님과 내 아내를 모르는 사이로 지내게 할 거야.” 이 말에 놀라셨나요. 파격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닙니다. 밀레니얼의 결혼관을 이야기한 한국일보 인턴들의 ‘대화록’에 실린 솔직한 속내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결혼은 부동산, 노동, 성차별 등 수많은 사회 이슈들이 얽혀 있는,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한바탕 ‘결혼 성토대회’ 끝에, 원하는 결혼이 무엇인지 털어놨습니다. 마라탕(麻辣燙ㆍ매운 향신료로 조리된 중국요리) 만들 때처럼, 각자의 결혼에 뭘 넣고, 뭘 빼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죠. 그 결과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얼한 마라탕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첫 번째는 돈 

알투 디투(메신저 대화명ㆍ이하 알투)= ‘결혼’하면 생각나는 건 바로 ‘돈’이야. 나는 학자금 대출이 수천만 원에 이르거든. 이걸 언제 다 갚고, 돈을 모아 결혼할 수 있을까? 입시나 취업보다 더 아득하게 느껴지는 인생 과제가 결혼이야. 나보다 학자금 대출 규모가 컸던 친오빠가 곧 결혼한대. 성공 비결은? 또 다른 빚을 내는 거야. 나도 엄청난 대출과 함께 결혼하면 되는 걸까. 이번 생은 계속 빚을 내 살아가는 적자 인생이 되려나 봐. 오빠는 그나마 서울에 살지 않아서 결혼이 가능했어. 그 신혼집 전세금으로 서울에선 원룸 구하기도 쉽지 않아.

시트러스 곤듀(이하 곤듀)= 어른들이, 일단 결혼하면 돈이 모일 거래. 근데 당장 결혼할 돈이 없어. “예전에는 다 단칸방부터 시작했다.” 요즘엔 단칸방도 너무 비싸. 1998년 이전에 결혼할 때는 1억 이상 대출받은 경우가 1%도 안됐대. 2014년 이후 결혼한 사람들은 37%가 넘어(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년 전국 출산력 실태조사). 주거비 부담이 엄청나게 증가한 거야. 게다가 우리에겐 "단군 이래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라는 수식어도 있잖아.

캡틴 마블링(마블링)=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면, 돈 문제로 엮일 일 없게 연애만 하는 게 좋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돈 문제로 자꾸 부딪히면 얼마나 끔찍하겠어. 차라리 경제 여건이 서로 갖춰진 상대와 결혼하는 게 훨씬 나아. 최대한 스펙 쌓고, 연봉 높인 뒤 조건 맞는 사람을 찾을 거야.

밤샘엔 봉봉 드링크(봉봉)= 결혼에서 돈이 절대적 부분은 아닐 수 있잖아. 꼭 번듯한 집에서 살아야만 결혼인 건 아니지. 둘이 되면 생활비를 아낄 수 있어. 법적 부부가 되면 분양, 전세 자금 대출 등 혜택들도 있지. 결혼식 비용도 줄여보면 되잖아. 내 지인은 양가 20여명이 모인 식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어. 영상을 봤더니 예복도, 분위기도, 진행도 색달랐어. 지금까지 본 결혼식 중 가장 감동적이었어. ‘이런 게 진정 결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 가족이 돌아가며 편지를 낭독하는데 폭풍눈물을 쏟았다니까. 신랑, 신부는 서로에게 ‘잘 살아가자’는 약속을 하고, 모인 사람들은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게 마음에 닿더라. 일반적인 결혼 공식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해. 그 지인은 작은 오피스텔에 살림을 차렸어. 나도 지금 사는 원룸이 신혼집이 되어도 괜찮아. 주례, 축의금, 혼인신고 없는 결혼을 하고 싶기도 해. 부모님이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남 신경 쓰이지만, 벗어나 결정하고 싶어 

마블링= 그런 결혼하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아. 우리 사회는 체면을 중요시하잖아. 결혼도 예외가 아니지. 나는 안 하려고 해도 자꾸 남이랑 비교하게 돼.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과 방식을 갖추지 못하면, 제대로 된 결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어릴 때부터, “걔는 ○○학교 갔대.” “쟤는 ○○회사 갔대.” 이런 말을 듣고 살았는데, 결혼에 있어서만 ‘난 단칸방에서 살아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갑자기 생기겠냐고.

종각역 피노키오(피노키오)= 보통 결혼식에 가면 신랑과 신부가 주인공 같지가 않아. 손님의 대부분이 신랑, 신부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결혼식은 부모님의 삶에서 중대한 행사지. "내 자식 이렇게 잘 키워 결혼시키니까 구경하세요."

곤듀= 그래서 부모님이 일단 ‘갔다 오더라도(이혼하더라도)' 결혼하라고 하시나 봐. 결혼 안 하면 '자식 농사 실패'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어릴 땐 공부 잘하고, 커서는 괜찮은 직장에 취업한 잘난 자식도, 결혼 안 하면 한순간에 못난 자식이 되는 마법이 일어나. 결혼 안 하고 나름대로 잘 사는 분도 많은데.

봉봉= 우리 집에선 삼촌이랑 고모가 결혼을 안 하셨는데, 두 분 다 행복하게 살고 계셔. 그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가. ‘결혼 언제 할 거냐’고 압박하면, 짜증은 나겠지만 크게 상관 안 할 것 같아. 결혼 안 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곤듀= 부모님은 괜찮지 않으신 것 같아. 결혼 안 하겠다고 말하면 "네가 뭐가 못나서!"라고 화를 내셔.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잘 와 닿지 않으시나 봐.

나무늘보랑 친해질래(나무늘보)= 결혼 안 한 사람을 사회가 어떻게 취급하는지 아니까 그러실 거야. 비혼이란 말을 자주 쓰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잖아. ‘결혼을 안 한다’는 건 아직 정상이 아닌 거야. 뭔가 문제가 있는 거지. 비혼 여성이 조금만 까칠해도 ‘노처녀라 그렇다’며 조롱하는 게 가장 흔하지. 함부로 해도 되는 만만한 여자로 취급하기도 해. 이모는 40대에 결혼하셨는데, 직장에서 각종 성희롱에 시달리셨어. 근데 결혼하자마자 그 모든 게 딱 끊겼대. “결혼 안 한 여자로 사는 건 너무 불리하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어떤 회사에서는 남자들이 35세가 넘을 때까지 결혼을 안 하면 ‘노총각 연합회’라는 사내 모임에 억지로 가입시키고 놀린대(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설문조사).

 ◇결혼, 다음 코스는 출산? 

마블링= 결혼은 좋은데, 출산은 꺼려져.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17%뿐이래. 불공평해! 육아 의무를 남편과 동등하게 짊어질 수 있다면 기꺼이 아이를 낳을 텐데. 지금처럼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다면, 출산 없는 결혼 생활을 하게 될 거야.

나무늘보= 결혼한 뒤 아이 낳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결혼 전에 아이를 안 낳겠다고 선언하면, 결혼을 허락할 부모가 얼마나 될까? 친구네 어머니는 ‘결혼해서 아이 낳기 싫으면, 양가에 차라리 못 낳는 거라고 말하라’고 하셨대. 출산을 못 하는 경우는 있어도, 안 하는 경우는 없단 거지.

피노키오= 결혼해서 아이들을 꼭 키우고 싶어. 근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생각을 자주 해. 국가에서 매달 한 명당 200만 원씩 준다면. 3명 이상 낳을 수도 있어! 왜 200만원이냐고?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는 비용이 보통 한 달에 180~200만원 정도래. 국공립 유치원은 얼마 없어 들어가기 힘들고, 비리 온상으로 드러난 사립 유치원에는 보내기 싫어. 남은 방법은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거지. 취학 전까지 매달 200만원씩 지원된다면 어느 정도 안심하고 여럿 낳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무늘보= 4월 말부터, 6세 미만 아동에게 조건 없이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보편적 아동수당제를 시행한대. 좋은 변화야. 이렇게 수당을 지원하는 제도들이 조금씩 생겨나긴 했어. 근데 그것만으로는 아이 안 낳겠다는 생각 쉽게 바뀌진 않을 거야. 일단 삶이 불행해. 경쟁에서 살아남기 너무 힘들고, 워라밸 맞추기는 진작에 망했지. 자녀와 대화하고 교감할 시간이나 있을지 모르겠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세상이 아냐.

피노키오=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이라는 데 공감해. 하지만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여기저기서 말하잖아. 노령화된 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면서, 출산 안 하면 자꾸 큰일 난대.

나무늘보= 저출산이 진짜 사회 문제인지 의문이 들어. 그냥 이 세상이 문제인 거 아냐? 저출산은 결과지. ‘저출산이 문제다!’ 하면서 은근히 여자를 탓하는데, 그럴수록 상황은 더 심각해질걸.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고, 각자 특성을 발휘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갑자기 애를 낳고 싶어지진 않을 거야. 여자 몸이 세금 낼 사람 찍어내는 공장도 아니고!

 ◇나를 잃지 않는 결혼이라면 당장 할래! 

알투= 망할 학자금 대출 다 갚고 나중에 돈 좀 모이면,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혼자, 또는 파트너와 가정을 이뤄서. 성애적 관계에 있는 사람만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 안 해. 성별도 크게 상관없지. 누군가는 ‘그게 결혼이냐?’고 하겠지.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결혼인지 누가 정하는 건데? 나한테 결혼을 생각해보라면 그런 형태로 떠오르는 걸. 너희가 생각하는 결혼과 가정의 모습은 어때? 지금 사회에서 통용되는 ‘결혼’의 공식들을 깨도 된다면, 어떤 결혼을 원해?

곤듀= 얼마 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읽고 가족 구성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 꼭 남녀 두 명이 예식장 들어갔다가 혼인신고해야만 결혼한 게 아닐 수 있지. 미드에서 보니까 여자 1명에, 남자 4명이서 결혼했던데? 결혼을 정의하는 건 어렵지만,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결혼과 가족의 범위가 너무 좁다는 건 분명해. 제도적으로 동성 결혼도 허용 안 되고, 함께 사는 동반자가 있더라도 보호자로서 지위를 인정 안 해. 위험한 수술을 환자 본인 대신 동의해야 할 때, 권리가 없으니 부모나 친지를 찾아야 하지. 프랑스의 시민 연대계약, 독일의 생활 동반자법처럼, 성별이나 혈연에 관계없이 파트너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 협소한 가족제도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될 거야.

마블링= 내가 꿈꿨던 결혼의 모습은,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랑 사는 거야. 지금의 제도적인 결혼은 고려할 게 너무 많아. 그걸 따르려면 삶이 힘들고 복잡해져. 쓸데없는 의식, 의무 같은 건 다 떼버리고 서로의 상황에 맞게 동거하고 싶어.

피노키오= 신랑 신부가 결혼의 주인이 되는 모습을 원해. ‘이제부터 한 가족’ 이라면서 결혼하자마자 부여되는 의무들이 이상해. 부모님의 가정과 철저히 분리된 결혼 생활을 하고 싶어. 배우자와 내 부모님이 만날 일이 없게 할 거야. 연락처도 모르고, 지나가다 마주쳐도 긴가민가 할 정도의 남남으로 지냈으면 해. 각자의 부모님에게 알아서 충실하면 된 거 아냐?

봉봉= ‘나’라는 개인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기꺼이 결혼하겠어. 여자들은 결혼하면 이중 노동에 시달리는 등, 여자로서, 또는 엄마로서 기대되는 역할이 있잖아. 같은 층위에 두고 말하겠다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남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부담된다는 거야. ‘가장’으로 인식되는 거 말이야. 희생이 당연하고, 그 역할 속에서 ‘나’는 사라져 버리는 게 싫어서 결혼을 경계하게 되거든. 보통은 연세가 조금 있으신 분들이 ‘가장의 희생’을 강조하셔. 그게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면 나는 ‘철없고 이기적인 요즘 애들’이 되더라. 나와 배우자 모두가 그런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나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결혼을 원해.

 ◇비혼 주의가 뭐 어때서 

나무늘보= 난 내 결혼이 어땠으면 좋겠다고 딱히 생각해 본 적 없어. 결혼 안 할 거거든. 요즘 비혼주의인 친구들이 꽤 많더라고. 그 친구들이랑 같이 살면 재미있지 않을까? 비혼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공덕동 하우스’의 이야기를 들었어. 나름대로의 규칙과 제도를 정하고 서로 도우며 살고 있더라. 가사 노동은 확실하게 분담하고, 누군가 아플 때를 대비해서 기금도 마련해. 멋진 가족이야. 근데 요즘 비혼주의라고 말하면, 돌연변이를 본 것 같은 눈빛을 보내면서 대놓고 놀랐다는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성에 트라우마가 생길 만한 사건을 겪은 거 아니냐, 그게 아니라면 가족에 상처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라며 무례하게 타인의 삶을 짐작하려고도 해. 비혼 주의가 이해 안 되면, 열 번 외치고 외워보자. “비혼도 행복할 수 있는 선택!”

알투= 나는 비혼 주의자들이 결혼을 단순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름대로 진지하게 결혼을 고려하고 고민해 본 사람들일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 맞지도 않는 ‘결혼’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어 봤자.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어져. 그럴 때 비혼은 현명한 데다 이타적이기까지 한 결정이지. 그리고, 결혼이 그냥 싫어서 비혼주의라면 뭐 어때? 이 결혼 제국에서, 결혼을 좀 싫어할 수도 있지. 기혼자들은 맨날 결혼 생활 지긋지긋하다고 하잖아!

정리=김의정 인턴기자

참여=임태형, 정선아, 김의정, 주소현, 홍윤기, 홍윤지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