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이 자카르타 도심에 위치한 연구원 사무실에서 수집품을 소개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여자가 싸돌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쯧쯧.”

“당신, 어디 되나 보자, 택도 없다(어림없다).”

“엄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뒤에서 수군대는 남은 말할 것 없고, 남편도 자녀도 대놓고 반기지 않는 길을 20년째 전진하고 있다. 여전히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안 되는 일을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힘겹게 살고 있다. ‘나 오늘 죽겠다’ ‘이제 정말 더는 아니다’는 절규가 목울대를 넘으려 할 때마다 그는 무대 위 주인공처럼 독백했다. “이 고비만 넘으면 더 좋아지리라” “알고도 알리지 않는 건 죄악이다” “여성은 세상을 바꾸는 당당한 주체다” “단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서 후세에 물려주리라”.

사공경(64)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은, 그 정갈한 직함 안에만 담아둘 수 없는 존재다. 열정, 끈기 같은 꾸밈말을 헌정해야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리하여 벅차고 귀하다. 돈도 힘도 안겨주지 않는, 상처뿐인 명예만 얹어주는, 누구는 진작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법한 일을 그가 긴 세월 도맡지 않았다면 단언컨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문화 교류는 깊은 맛으로 우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자카르타 현지 문화와 역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가 있다. 마주칠 때마다 “인터뷰” “인터뷰” 읍소했건만 두 달 만인 지난 18일에서야 함께 정좌할 수 있었다. 속된 말로 ‘인도네시아와 단단히 바람난 여성’이 쏟아내는 인도네시아 얘기와 자료들을 제대로 풀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오직 그만 바라보기로 한다. 위기마다 그가 보았다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엿보길 바라며.

사공경 한인니문화원장이 초로 염색해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인도네시아 전통의 바틱 기법을 설명하면서 직접 실연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어떻게 인도네시아와 연을 맺었나.

“1990년 주재원으로 온 남편 따라왔다. 왜 하필 위험한 나라 가냐고 주변에서 다들 말리는데 속으로 기뻤다. 자바원인, 박완서 단편 속 고무공, 보루네오 가구 같은 막연한 동경, 신비한 매력에 이끌려 마음 문을 열고 왔다. 겁도 없이 참 많이 다녔다. 3년 뒤 남편 주재 기간이 연장되니까 옳거니, 일을 하고 싶어 미치겠더라. 작은 혁명을 꿈꾸던 대학시절, ‘지식은 사회에 환원하라’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그는 97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고등부 사회 담당 교사로 부임했다.

-왜 교사를 택했나.

“일본인이 당시 많았다. ‘10년 뒤면 우리도 저렇게 오겠구나(예측은 거의 들어맞았다), 미리 준비해야지, 우선 학생들에게 인도네시아를 알리자, 낯섦이 주는 열정을 나누자’는 심정이었다. 학생들을 현장으로 막 끌고 다니고, 인도네시아 관련 시험 문제도 많이 출제했다. 위에서 싫어했다.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갈 아이들, 대입 준비도 힘든데 쓸데없는 거 가르쳐서 괴롭힌다고. 속상했다.” 그는 교사로 14년 일했다.

-언제 한인니문화연구원을 꾸렸나.

“아담 말릭 전 부통령이 만든 박물관에 자주 갔다. 어느 날 추레한 고인의 가족을 만났다. 형편이 어려운데도 ‘국민에게 선물할 게 박물관밖에 없다’는 고인의 유지를 지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부통령이니까 얼마나 부자야, 이 나라 부정부패도 심하니 그런 돈으로 박물관 세웠겠지’ 했던 착각이 무너지면서 각성했다. 99년 한인부인회 소속으로 문화탐방반을 꾸렸다. 소속, 이름, 장소가 여러 번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2015년 현재 자리(코리안 센터)에 정착했다.”

-무엇을 하나.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열린 강좌’ 61회, 인도네시아 곳곳을 누비는 ‘문화탐방’을 328회 진행했다. 5만명 이상이 인도네시아를 맛본 셈이다. 2016년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5일간 바틱(Batik) 전시회를 열었다. 발 디딜 틈도, 앉아있을 시간도 없을 만큼 성황이었다. 인도네시아를 알릴 수 있다면,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뭐든지 한다. 혹여 ‘덥다’ ‘지저분하다’ ‘볼 거 없다’ 불평할까 봐 탐방 전 답사를 다섯 번 간다. 인도네시아 관련 요청이 오면 어떻게든 돕는다. 쉴 틈이 없다.”

2016년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바틱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사공경 한인니문화원장. 한인니문화연구원 제공

-어디서 열정이 나오나.

“내가 나를 이해 못할 때가 있다. 일은 밀려들고, 비용도 문제고, 좋은 소리도 못 듣고. 그런데 인도네시아 문화를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초과학적 영감과 감수성, 소통능력이 깃든 인도네시아 전통 문화는 잘만 포장하면 먹힐 텐데. 양국의 오리지널 문화를 결합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산업으로 발전하고 동반성장도 가능할 텐데.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상대해야 할 나라가 아세안 특히 고유한 문화에 자원도 풍부한 인도네시아인데. 더 알아야 하고, 더 가까워져야 하는데.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계속 나아간다. 몇 안 되지만 든든한 회원들과 소수지만 짱짱한 객원연구원들과 함께. 그의 소망은 이런 거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어요. 인도네시아 문화를 배우는 작은 학교를 짓고 싶어요. 당장은 운영난에서 벗어나고 싶죠.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20년을 한결같이 달려 온 비영리단체에 정부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이 인도네시아 문화탐방 중에 만나 카메라에 담은 현지 여성에 얽힌 얘기를 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사공 원장은 최인훈 소설 ‘광장’의 서문을 두어 번 인용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현장에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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