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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테이너 시대] 나영석 뒤엔 이우정… 스타PD 움직이는 실세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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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테이너 시대] 나영석 뒤엔 이우정… 스타PD 움직이는 실세 작가들

입력
2019.04.27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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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왼쪽부터)와 이우정 작가, 신원호 PD는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며 방송가에 ‘제작자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tvN 제공
나영석 PD(왼쪽부터)와 이우정 작가, 신원호 PD는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며 방송가에 ‘제작자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tvN 제공

“그렇다면 이우정 작가는?” 나영석 PD가 지난해 성과급을 포함해 연봉 40억원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자주 들려 온 얘기다. 이 작가의 연봉을 정말로 궁금해하는 질문이라기보다, 프로그램의 성공에 이 작가가 차지하는 공헌도가 나 PD 못지않다는 의미를 내포한 감탄사에 더 가깝다.

나 PD가 연출한 예능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시청자라면 ‘이우정’이라는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출연자의 입을 통해 방송에도 종종 등장한다. 나 PD와 이 작가는 방송가에서 손꼽히는 명콤비다. 나 PD 연출작에는 항상, 어김없이 이 작가가 있다. tvN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윤식당’ ‘알쓸신잡’ ‘스페인 하숙’ 등 방송가 트렌드를 바꾼 인기 프로그램들이 두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작가를 두고 ‘방송가를 움직이는 숨은 실세’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버 콘텐츠의 매력을 증명한 ‘꽃보다 할배’. tvN 제공
실버 콘텐츠의 매력을 증명한 ‘꽃보다 할배’. tvN 제공

 ◇예능 트렌드를 바꾼 쌍두마차 

나 PD와 이 작가는 KBS에서 만났다. 나 PD가 조연출을 맡은 KBS ‘산장미팅-장미의 전쟁’에 이 작가가 참여했다. 성향이 비슷한 두 사람은 호흡이 잘 맞았다. ‘산장미팅-장미의 전쟁’ 이후로 ‘여걸 파이브’ ‘여걸 식스’를 함께 만들었고, 한때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 예능’으로 군림했던 ‘1박2일’을 이끌었다.

두 사람의 협업은 나 PD가 2013년 CJ ENM으로 이직한 뒤 한층 시너지를 냈다. 원로 배우들의 배낭 여행기를 그린 ‘꽃보다 할배’는 실버 콘텐츠의 잠재력을 증명했고, 자급자족 일상을 다룬 ‘삼시세끼’는 느린 삶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알쓸신잡’으로 ‘인문학 예능’이라는 신세계도 열었다. ‘윤식당’이 차려진 인도네시아 발리와 스페인의 작은 마을은 유명 관광지가 됐다. 특급 스타가 출연하지도 않고 화려한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예능의 본령은 웃음이 아닌 ‘공감’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나 PD는 제작발표회와 강연 등에서 이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작가를 비롯해 후배 작가들, 후배 PD들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방송 아이템으로 발전한다. 이 작가는 내게 가장 큰 영향과 자극을 주는 크리에이터다.”

[저작권 한국일보] 스타 PD 뒤에 대형 작가. 그래픽=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스타 PD 뒤에 대형 작가. 그래픽=김경진기자
방송가에 복고 열풍을 일으킨 ‘응답하라 1988’. tvN 제공
방송가에 복고 열풍을 일으킨 ‘응답하라 1988’. tvN 제공

 ◇PDㆍ작가 협업 시스템화 

이 작가의 대표작은 예능프로그램에 한정되지 않는다. tvN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로 이어지며 복고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집필하고, ‘슬기로운 감빵 생활’을 기획했다. 연출자 신원호 PD는 이 작가의 또 다른 파트너다. 과거 나 PD의 ‘1박2일’과 형제 프로그램이었던 ‘남자의 자격’을 신 PD와 합작했다. 당시 이 작가는 ‘해피 선데이’라는 타이틀로 함께 묶인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을 동시에 아우르며 배후에서 제작을 지휘했다. 예능 출신 신 PD가 tvN으로 옮겨 드라마 연출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작가의 드라마 대본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 작가는 2013년 ‘응답하라 1994’가 한창 방영되던 중에 ‘꽃보다 누나’ 촬영도 병행했다. 성격이 다른 두 분야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던 건 이 작가가 이끄는 ‘작가 군단’ 덕분이다. ‘1박2일’ 때부터 ‘예능 DNA’를 공유해 온 최재영 작가와 김대주 작가가 메인 작가로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이 작가는 총괄 기획자로 밑그림을 그리고 방향성을 제시한다. 최 작가와 김 작가는 과거 ‘알쓸신잡’과 ‘윤식당’을 함께 맡았고, 김 작가는 최근 방영 중인 ‘스페인 하숙’에도 메인 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들의 크레디트에는 작가 이름이 10명 넘게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나 PD와 이 작가는 이러한 협업 형태를 시스템화했다. ‘신서유기’의 신효정 PD, ‘윤식당’의 이진주 PD, ‘알쓸신잡’의 양정우 PD, ‘스페인 하숙’의 장은정 PD 등 ‘나영석 사단’ 연출자들이 ‘이우정 사단’ 작가들과 유기적으로 호흡을 맞춘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공백 없이 내놓으면서도 모두 성공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 제작 시스템에서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주류인 관찰 예능에선 PD와 작가의 유기적인 소통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나영석ㆍ이우정 사단은 프로그램의 정서를 만들고 대중이 원하는 걸 포착해 의미화하는 데 특장점이 있다”고 평했다.

'삼시세끼 어촌편2'에 출연한 유해진(왼쪽부터), 차승원, 손호준. 나영석ㆍ이우정 사단이 빚어낸 결과물 하나다. tvN제공
'삼시세끼 어촌편2'에 출연한 유해진(왼쪽부터), 차승원, 손호준. 나영석ㆍ이우정 사단이 빚어낸 결과물 하나다. tvN제공

 ◇이젠 예능도 작가주의 시대 

PDㆍ작가 콤비는 주로 드라마 분야에 많았다. tvN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을 같이한 이응복 PDㆍ김은숙 작가,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MBC ‘봄밤’(5월22일 방영)을 만든 안판석 PDㆍ김은 작가, JTBC ‘눈이 부시게’와 ‘송곳’,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를 제작한 김석윤 PDㆍ이남규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예능 분야에서도 PD와 작가로 구성된 창작 집단이 방송가를 움직이고 있다.

최근 화제를 뿌리고 있는 JTBC ‘슈퍼밴드’에는 조승욱 CP와 김형중 PD 그리고 노윤 작가가 있다. 세 사람은 앞서 ‘팬텀싱어’도 만들었다. 조 CP와 노 작가는 ‘히든싱어’를 기획해 시즌5까지 성공시켰다. 비연예인 출연자나 무명 뮤지션이 나오는 음악프로그램들이다. 조 CP는 “SBS ‘스타킹’ 작가로 방송가에서 유명했던 노 작가는 일반인 출연자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탁월한 강점이 있다”며 “작가들은 스태프나 조력자가 아니라 공동기획자”라고 말했다. 그밖에도 JTBC ‘썰전’과 ‘비정상회담’ 등 시사 예능 분야에 특화된 정다운 작가, 윤현준 CP와 함께 JTBC ‘한끼줍쇼’와 ‘요즘애들’을 만든 신여진 작가 등도 방송가가 신규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작가들이다.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이직한 한 PD는 “좋은 조건으로 타 방송사에 스카우트된 건 작가진을 비롯한 네트워크를 방송사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능 PD들이 그러했듯 예능 작가들도 과거에는 위상이나 지위가 낮았다. 엄연히 제작 주체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인정받지 못했다. ‘나영석ㆍ이우정 사단’은 예능 분야에도 ‘제작자 시대’ ‘작가주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정덕현 평론가는 “갈수록 세분화되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충족하려면 전문 분야별로 특화된 제작 인력이 필요하다”며 “마블과 픽사 같은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각각의 특장점으로 브랜드화되듯이 한국 방송가에도 창작자 중심의 스튜디오식 제작 방식이 점차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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