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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너] 헌재가 불 붙인 ‘위대한 토론’과 낙태죄 폐지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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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너] 헌재가 불 붙인 ‘위대한 토론’과 낙태죄 폐지 해설서

입력
2019.04.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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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너’는 현상부터 근원까지 이야깃거리를 몽땅 끄집어 내고 싶은 ‘한국일보’의 멀티 플랫폼 스토리텔링 콘텐츠입니다. 텍스트, 비디오, 데이터 등등. 가능한 모든 도구로 사람과 사회, 역사와 현상을 연결 지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2주에 한 번, 일요일 오전에 찾아 뵐게요.

2012년 11월 8일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있던 날, 고3 수험생 A(18)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언어영역은 쉽고 외국어영역은 어려웠다던 그 해. 고사장에 앉아 문제를 풀어 나갔을 그녀는 대학 합격의 희망을 봤을까요. 아니면 수능 시험지보다는 자신의 배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을 까요.

이틀 후인 11월 10일 A씨는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한 산부인과 병원 수술대 위에 눕게 됩니다. 그리고 임신 23주차였던 그녀는 영영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낙태 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숨졌다.’ 짤막한,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언론 기사가 A씨의 마지막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보도를 보면 A씨의 부모는 “학교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던 아이가 혼자서 임신 사실을 숨기며 겪었을 마음 고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해당 기사 아래에는 “태아가 혼자 죽기 억울해 길동무로 데려갔나 보네”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어린 딸이 혼자 감내했을 공포를 간접체험하며 가슴을 쥐어 뜯었을 부모의 심정과 임신중절을 혐오하면서도 여성 일방만을 표적으로 한 저주가 공존하는 현실. 그러나 이 괴기스러운 상황은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반복됐던 ‘국가가 만든 공공연한 비밀’이자 ‘금기’ 였습니다.

한국의 국가 시스템은 A씨 사건이 있은 지 7년 가까이가 더 지나서야 이 비극과 폭력의 되풀이를 마감하고자 새로운 진단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진단에 대한 구체적인 처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이제 막 토론이 시작됐습니다. 오늘 오리지너는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일부 조항이 국가의 근간인 헌법 정신에 위배 된다고 판단한 근거를 중심으로 임신중절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2012년 11월 14일자 동아일보
2012년 11월 14일자 동아일보

 ◇그 날, 헌법재판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016년 한 산부인과 의사가 재판에 넘겨집니다. 2013년 11월부터 약 2년간 낙태 시술을 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우생학적’으로 또는 유전되거나 전염되는 심각한 질환을 갖고 있거나, 여성이 강간 등으로 임신한 경우, 임신을 지속했을 때 생명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 등이 아니면 낙태 수술을 할 수가 없는데 했다는 이유였죠. 여성에게는 최대 징역 1년, 의사에게는 최대 징역 2년의 형벌이 내려질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반발합니다. 본인에게 적용된 형법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 운명 결정권’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에 어긋나며, 헌법에 어긋나는 법으로 자신을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였죠.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한 사람의 산부인과 의사가 자신의 운명을 구하려는 시도였지만, 사실은 임신 중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수많은 여성의 운명이 달린 문제였습니다.

A씨가 산부인과에서 숨지기 불과 몇 달 전인 2012년 8월에도 헌재는 같은 문제를 다뤘지만, 형법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을 내렸었죠.

2012년 8월 4일자 한국일보
2012년 8월 4일자 한국일보

그로부터 약 7년 후인 지난 11일. 헌재는 총 9명의 재판관 중 7명의 의견을 모아 “국가가 낙태를 한 사람을 처벌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무조건, 사실상 모든 낙태를 처벌하는 건 헌법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립니다. 1953년에 만들어진 여성 본인의 ‘자기 낙태죄’ 처벌 조항이 66년만에 종언을 고한 것이죠. 다만 당장 낙태죄 처벌 조항을 없애버리면 사회적 혼란이 있을 수 있으니 국회가 2020년 12월 31일까지 해당 법 조항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엄마가 먼저냐, 뱃속 아기가 먼저냐’ 잘못된 질문이 부른 잘못된 답 

헌재가 과거의 판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넘어서야 했던 프레임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중에 무엇이 더 우선하는가’ 였습니다. 먼저 자기결정권을 살펴볼까요.

낙태죄 처벌 조항의 위헌을 주장하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재의 헌법 불합치 판결 선고 소식을 들은 후 기뻐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낙태죄 처벌 조항의 위헌을 주장하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재의 헌법 불합치 판결 선고 소식을 들은 후 기뻐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한다. 존엄성이 실현되려면 인간이 자신의 생활과 삶의 방식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 반드시 필요하다. 임신한 여성도 인간이므로 자신의 삶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임신 상태를 유지할지, 중단할지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다음은 생명권입니다.

'낙태법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 회원들이 지난 해 5월 24일 진행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을 앞두고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낙태법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 회원들이 지난 해 5월 24일 진행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을 앞두고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태아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체에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태아는 모체와는 별개의 생명체다. 태아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헌법상 생명권을 가진다. 국가는 인간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보호해야 하며 태아도 예외가 아니다. 

언뜻 자기결정권과 생명권은 언제나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한쪽만 성립할 수 있는 가치로 보입니다. 과거의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가 우선한다고 답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헌재가 내린 답은 다르면서도 허탈하리 만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재판관 다수는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어머니의 몸이 신체적으로나 사회ㆍ경제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태아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이죠.

과거의 질문에는 낙태를 결정한 여성이 무조건 가해자이고 태아가 피해자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헬조선’으로 불리는 우리 사회에서 본인과 태아를 위해 가장 깊은 고민을 할 사람은 임신한 여성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무시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직접적인 충돌을 해결해야 하는 사안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매듭짓습니다. 이는 여성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권이 극도로 침해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임신한 여성 스스로의 판단을 가장 존중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데 큰 바탕이 됩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이제서야 말이지만, 국가는 비겁했다 

첫 번째 관문을 넘어서자, 그 동안 국가가 법이라는 명분으로 강제했던 규칙이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드러납니다. 사실 이번 헌재의 결정문에는 법률 용어로 표현되지 않았다면 훨씬 민망했을 법한 대목이 자주 등장합니다. 열거하기에 앞서서 다시 강조하자면 낙태죄의 핵심 존립 근거는 ‘국가는 모든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생명’은 언제나 보호 받았을까요. 

헌재는 “인구 억제 정책을 시행하던 시기에는 국가가 낙태를 묵인하기도 했다”며 “국가의 인구정책 여하에 따라 자기낙태죄 조항의 실제 가동 여부가 좌우되는 것”이라고 명확히 지적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산부인과 전문의인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는 “1960, 70년대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면서 많은 보건소에서 낙태와 불임 수술을 무료로 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당시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정부 정책이 중단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생명’은 공평하게 보호 받았을까요. 

앞서 언급했듯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한 낙태를 허용하는 예외적 사유에는 ‘우생학적’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가 포함됩니다. ‘인종개량학’이라고도 불리는 우생학은 1883년 영국의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창안한 개념으로, 인간의 유전자 가운데 열등한 것들을 걸러내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을 일컫습니다. 다시 말해 현행법은 수 백년 전에 등장했다가 학계에서 사실상 폐기된 개념을 빌려와 ‘등급이 낮은 유전자’를 물려 받는 태아를 낙태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여성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2017년 12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여성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2017년 12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낙태죄 처벌을 통한 태아 생명권 보호’에 얼마나 열심히 나섰을까요 

헌재가 변론 과정에서 채택한 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연간 약 17만건의 낙태가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그러나 대검찰청에 따르면 2006~2013년 기간 여성이 낙태 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연간 10건 이하였습니다. 헌재는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 조항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고 꼬집습니다.

 낙태죄의 부작용은 없었을까요 

헌재는 “자신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이 병원에서 낙태를 한 후 자신을 만나지 않으려 할 때 상대 남성이 낙태죄로 고소하겠다고 위협을 하는 경우, 배우자가 이혼소송 과정에서 재산분할이나 위자료청구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낙태에 대한 고소를 하는 경우” 등 악용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뿐만 아니라 “처벌 조항 때문에 음성적으로 낙태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의료 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렵고, 수술 전후로 적절한 의료서비스나 상담, 돌봄 등을 제공받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입니다.

 낙태죄를 없애면 낙태가 늘어날 것이다? 

변론 과정에서는 낙태죄 처벌을 없애거나 줄이면 낙태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헌재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여 낙태가 증가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 국가가 낙태를 처벌하는 국가에 비하여 낙태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는 실증적인 결과가 있을 뿐”이라고 밝힙니다.

많은 여성인권단체들은 임신 및 출산으로 인한 사회활동 지장이나 소득이 적어 자녀를 부양할 수 없는 경우, 임신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ㆍ경제적 사유 때문에 낙태 갈등에 처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처벌이 아닌 적극적 지원 정책을 펼친 국가일수록 낙태율을 줄일 수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헌재가 남긴 거대한 ‘숙제’ 

헌재는 역사적인 선고를 내리면서 64페이지에 달하는 위헌소원 결정문을 남겼지만 결정적인 내용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여성의 자기 낙태와 이를 돕는 의사를 사실상 무조건 처벌하고 있는 현재의 형법은 헌법에 맞지 않으므로 2020년까지 이를 대체할 조항을 국회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 명료한 듯 보이지만 국회가 만들어야 할 대체 조항은 수많은 쟁점을 껴안고 있습니다.

특히 헌재는 무조건적인 처벌은 안 되지만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국가가 특정 기준에 따라 낙태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보다 임신중절 허용 기준이 넓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낙태는 국가가 금지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과연 이 기준은 뭘까요. 헌재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태아의 발달 단계에 따라 국가가 처벌과 같은 생명권 보호 수단을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주수 제한’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WHO)는 보통 22주차 내외가 된 태아는 최선의 의료지원이 뒷받침 됐을 때 임신 여성 몸 밖에서도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상 하나의 생명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시간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 행사는 그 이전 기간(결정가능기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죠.(헌법불합치 판단 재판관 4인의 의견.) 또한 이 결정가능기간 중 초기 어느 시점까지 임신 여성이 임신중절을 하려 할 경우 사회적ㆍ경제적인 사유를 요구할 것인지 여부를 정하는 것도 국회의 재량에 달렸다고 밝힙니다. 국회의 논의 과정에 따라 임신중절 가능 시기와 조건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낙태죄의 위헌을 주장한 다른 2인의 재판관은 모체 건강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초기 14주까지는 아무런 사유 없이도 임신 여성의 의사에 따라 임신중단을 허용해야 하며 22주 후에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는 가능케 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앞서 낙태죄 처벌을 부분적으로 폐지한 다른 선진국들도 각각 다른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범 답안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논쟁 ‘2막’은 시작됐다. 


지난 15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에 발맞춰 모자보건법과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이미 논쟁의 ‘2막’은 활짝 열린 상태입니다. 이 대표 개정안의 골자는 임신 초기 14주 까지는 임신 여성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14~22주 기간에는 사회ㆍ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 허용하며, 22주 이후에는 모체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예상될 때 가능하게 했습니다. 사실상 가장 진보적인 의견을 낸 위헌 재판관 2인의 판단에 가까운 법안이죠. 그러나 이번 ‘낙태죄 폐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던 여성단체들의 연대체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 측은 시기와 사유를 제한해선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태료 수준이라 할지라도 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것 또한 비판하는 상황이죠.

그러나 ‘주수 제한’ 논란은 곧 다가올 폭풍 같은 논쟁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남은 1년 8개월 동안 국회의원들을 통해 수많은 난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몇 가지만 더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임신중절 허용 사유로 사회ㆍ경제적 요건을 정하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아이를 출산해서 양육하기 힘들 정도의 소득 수준이란 대체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비의료적 이유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상 불법입니다. 자신의 종교적, 양심적 신념에 반하기 때문에 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의사들은 처벌받아야 할까요? 

 #헌재는 임신 여성의 안전과 건강을 국가기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임신중절이 일정 부분 허용돼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임신중절 수술을 받게 되는 여성에게도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할까요. 

 #수술을 하지 않고도 임신 초기 9주 이내 정도 시점에만 복용하면 95% 가까이 유산을 가능케 하는 약물이 이미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습니다. ‘미프진’이라는 상품명으로 더 유명한 이 약물의 유통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요. 

 #맨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A씨 같은 많은 미성년자들은 부모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숨기다가 임신중절 수술 시기를 놓쳐 위험한 상황에 놓이고 있습니다.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경우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알려야 할까요? 알리는 것이 미성년자의 안전에 도움이 될까요? 

맞습니다.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도 위대한 토론 

헌법재판소가 11일 오후 낙태죄 처벌조항을 담은 형법 제269조 1항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낙태죄 위헌판결을 촉구해 온 여성인인권단체 관계자들이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헌법재판소가 11일 오후 낙태죄 처벌조항을 담은 형법 제269조 1항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낙태죄 위헌판결을 촉구해 온 여성인인권단체 관계자들이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여러분은 인간의 존엄성, 인권, 자기운명결정권, 생명권 같은 단어를 마지막으로 소리내어 말해 본 적이 언제인가요. 이번 ‘오리지너’를 준비하면서 잠시 생각해 본 바로는 아마도 대부분은 고등학교 윤리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개념이 더 우선인지, 한 개념은 다른 개념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 걸 보면, 정말 그냥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관념’의 기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지난 66년간 분명히 존재했던 수많은 A씨를 더는 외면해선 안 되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사람이 사람을 온전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법에 대해서 처음으로 토론할 기회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가 고민하지 않아도 국회의원들은 때가 되면 어떤 모양이 됐든 법을 개정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회가 시민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을 때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상, ‘오리지너’였습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자료조사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최한솔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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