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중국의 거대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에 측근을 통해 친서를 전달하며 관계개선 흐름을 이어가는 등 강온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4일(현지시간) 로마에서 열린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구상’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고 마이니치(每日)신문 등 일본 언론이 25일 보도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구상은 미국과 일본, 인도, 호주가 주축이 돼 태평양과 인도양에 이르는 지역의 안보와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사실상 이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콘테 총리와의 회담에서 제3국 인프라 투자 사업에 있어 재정적 지속가능성과 투명성 등이 담보돼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이탈리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것”이라도 했다. 이탈리아는 지난달 주요 7개국(G7) 중 중국과 일대일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첫 국가라는 점에서 중국의 유럽 진출을 견제하는 일본 측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일본은 일대일로에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대일로 투자를 받은 개발도상국을 채무불이행에 빠트려 중국에 종속하게 만드는 경향이 크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재정적 투명성, 지속가능성 등 국제 기준에 입각한 양질의 인프라 사업’이라는 조건에 부합할 경우에만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또 이런 방침을 유럽 정상 등 국제사회와 공유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겠다는 구상이다.
아베 총리가 지난 2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제3국 인프라 사업에서의 재정적 지속가능성과 투명성 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탈리아에 이은 슬로바키아 방문 및 동유럽 지역협력체인 비셰그라드 그룹 4개국(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 예정이다. 동유럽은 유럽 진출의 길목이라는 점에서도 전략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전날 측근이자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을 ‘총리 특사’ 자격으로 중국에 파견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시 주석은 니카이 간사장과의 만남에서 오는 6월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 주석의 일본 방문은 지난 2013년 취임 이후 처음이다. 니카이 간사장은 26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시 주석의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 연설에도 참석한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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