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남언 광주광역시 일자리경제실장
지난 1월 ‘광주형 일자리’ 대타협이 이뤄지면서 노사 상생형 일자리 창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주지만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 주거·문화·보육 등 복지 지원을 통해 노동자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이른바 사회통합형 일자리 모델이 바로 광주형 일자리다.
광주형 일자리가 처음 제안된 것은 2014년. 지역일자리 창출 차원이었다. 이어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약으로 구체화하면서 빛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 투자 의사를 밝히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현대차와 광주광역시, 노조 등이 협상을 시작, 타결을 목전에 뒀다 두 차례나 협약 체결이 지연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광주시와 현대차, 노조는 합의를 이뤄냈고 지난 1월 31일 투자 협약이 체결돼 법인 설립을 앞두고 있다.
광주시, 현대자동차, 기타 투자자 등이 주주로 참여하는 신설법인은 광주 빛그린산업단지 내 63만여㎡(19만평) 부지에 완성차 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이 공장에서는 연 10만대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이 생산되며, 광주광역시는 이로 인해 약 1만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어디에도 없었던’ 새로운 광주형 일자리 실무 협상에 참여했던 박남언 광주광역시 일자리경제실장을 지난 17일 시청에서 만났다.
-지난 1월 어렵사리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대타협이 이뤄졌다.
“광주형 일자리는 2014년 지방선거 공약으로 처음 제시됐다. 당시의 화두는 노사협력형 일자리 정도였고, 광주형 일자리 개념의 구체성도 부족했다. 이후 4대 의제로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협력, △원·하청관계 개선을 담아냈다. 대립에서 협력, 승자독식이 아닌 노사, 산업계, 원·하청 모두가 같이 살자는 취지를 살렸다.
광주형 일자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지자체 주도의 노사 상생 일자리 사업이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지금은 한국 경제의 미래가 걸린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이 됐다.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은 고임금 때문에 해외로 나가려했던 기업들의 발길을 국내 투자로 돌리고, 이미 해외에 나가 있는 국내 제조업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월 협약 체결 후 두어 달 가량이 지났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 과정은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1단계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로, 공약 제시, 개념 정립, 투자자 홍보가 이뤄졌다. 같은 해 3월 노사가 협력하는 모델을 광주에서 해보자며 노·사·정·시민단체가 참여해 합의를 선언했고, 노사 상생의 일자리를 우리가 만들겠다고 기업들에 알렸다.
2단계는 현대차에서 투자 의향을 밝힌 지난해 6월 시점이다. 적정임금, 불안정 노사관계에 대해 지역이 안전 장치를 마련해준다면 ‘해보겠다’라고 현대차가 의향을 밝힌 것이다. 3단계는 지난 1월 31일 노사가 합의하고 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 현재는 4단계로, 법인 설립, 공장 설립 준비 단계다. 이 공장이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되고 시장 경쟁력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5단계라고 본다.”
-최근에 공장 명칭을 공모했다는데.
“오는 5월까지 법인명을 공모하고 6월에 법인명이 결정 난다. 광주시가 대주주고 현대가 2대주주다. 투자자 모집은 현대차도, 우리도 전문가는 아니다. 삼일회계법인을 투자주관사로 정해 투자자 모집과 법인 설립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투자와 함께 공장도 올해 하반기에 착공해 2021년 하반기부터 차량을 생산할 계획이다. 공장이 가동되면 정규직 일자리는 1,000명, 거기에 따른 관련 부품기업들이 생기고, 이로 인한 일자리는 1만2,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분들도 있다.
“광주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이 사업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수십년간 국내에는 완성차 공장이 새로 지어지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 임금 문제도 있다고 본다. 일본의 도요타나 독일의 폭스바겐보다 우리 자동차산업 근로자들 임금이 더 높다고 한다. 임금은 높지만 잦은 파업 등으로 안정적 생산이 힘들었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한국 사회 전체와 산업계가 고민하고 있었고 광주시가 대안을 마련한 것이기에 국민적 공감이 있었다고 본다.”
-기업은 임금을 낮게 지급하고, 그것을 세금으로 메운다는 지적도 있다.
“물이 귀한 곳에서는 물 처리 기술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지역에서 (연봉) 3,500만원 정도면 괜찮은 일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 지역은 수도권보다 주거비나 물가가 저렴하다. 우리 지역에선 임금 5,000만원을 받고 수도권에 사는 것보다 조금 덜 받고 광주에 살겠다고 하는 청년들도 많다. 그런 면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 시에서 지난해 유출된 인구가 8,000명이다. 6,000명이 20~30대 젊은 층이었다. 빠져나간 이유는 단순하다.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로 건설이나 복지수당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많은 일이 세금 지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저출산대책에도 지금까지 수백조를 투입했다. 결국 경제를 버티는 것은 제조업인데, 그런 제조업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광주형 일자리 같은 투자는 기꺼이 해야 한다고 본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지만, 유럽 등 노동선진국에서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도 그렇게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원·하청, 정규직·비정규직, 지역 별로도 차이가 크다. 한국 현실에 맞게 풀어가야 할 것이다. 방향은 맞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 실현이 안 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지역에 절실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봤다. 광주형 일자리는 ‘틀리다 맞다’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잘해가면 되는 것이다. 성공을 통해 유사 사례를 계속 누적해 가야 한다.”
-상생형 일자리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군산, 구미 등 많은 지자체가 제2, 제3의 광주형 일자리 추진을 위해서 광주시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고, 성공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성공 비결은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일자리에 대한 지역사회의 간절함, 노동이 존중받고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대한 확실한 비전 제시, 단체장의 강력한 의지와 추진력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우리 시는 협약 타결에 이르기까지 노동계, 현대차 관계자와 각각 20여 차례 이상의 면담을 했고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해 이해와 협력을 요청하는 등 노사 양측과 적극적인 소통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이용섭 시장이 대시민 호소문 발표와 노조 대표와의 면담 등을 통해 직접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진두지휘해 왔고 경제단체·시민단체·학생 등 지역사회 각계각층의 시민들도 광주형 일자리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생산직 일자리에 더해 4차 산업혁명 준비는 어떤가.
“산업지형이 변화하고 미래 인재에게 요구되는 역량 또한 달라지고 있다. 그 어떤 시대보다 인력 양성, 즉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 시는 미래산업 육성을 위해 미래산업정책과를 지난 2015년에 신설하고 2017년에는 4차 산업혁명 전담팀을 새롭게 신설하는 등 4차 산업혁명에 발 빠른 대처를 해오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우리 시의 인공지능(AI) 중심의 산업융합 집적단지 조성사업이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아 광주가 인공지능 메카 도시로서 발전할 기반도 마련했다.
특히 도로, 철도 등 공공 인프라에 집중한 타 지자체와는 달리 우리 시는 유일하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AI 기반 지역산업구조 혁신사업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이 사업은 10년간 1조원을 투자해 국가적으로는 AI산업 육성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광주의 열악한 산업구조의 혁신적 변화를 끌어내고자 하는 복합 목적 사업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는 2029년에는 인공지능 창업 1,000개, 고용효과 2만7,500명, 인공지능 전문 인력 5,150명을 확보하게 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융·복합 신산업 발굴 육성으로 우리 지역에 보다 많은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각오나 계획이 있다면.
“우리 시는 그동안 먹고 사는 일보다 옳은 일에 더 큰 노력을 해왔다. 4.19, 5.18, 1987년 민주화운동 등 광주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한국 정치구조가 지역주의로 흐르다 보니 소외되고 발전이 안 된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본다. 우리가 새로 나설 문제는 이제 지역 일자리를 살리는 문제, 좀 더 나아가면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어 산업 측면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전국에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여건이 어렵지만, 그동안 지나온 일들도 쉬운 일은 없었다. 광주 특유의 토론 문화가 있고, 이곳에서 의견이 모이면 모두 하나가 된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많은 토론과 학습 과정을 거쳐온 곳이다. 이전에는 민주화가 절실했다면 이제는 산업적 희망이 필요한 때다.
이른 시일 내에 투자자 모집을 완료하고 빛그린산단을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대표적 산단으로 육성,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주거, 보육, 문화, 교육 등 노동자의 삶 전반에 대한 복지 혜택을 제공할 것이다. 2022년까지 빛그린 산단 인근에 행복주택과 임대주택을 건설할 예정이다.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장어린이집도 세우고, 여가문화 활동 지원을 위한 개방형 체육관, 노사동반성장지원센터 등도 건립할 예정이다.
광주에서 이 모델을 꼭 성공시켜 자동차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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