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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핫&쿨] 미국 텍사스 인종혐오범죄자, 21년 만에 사형 집행

입력
2019.04.25 12:39
수정
2019.04.25 18:3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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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흑인 증오범죄로 희생당한 제임스 버드 살인사건의 범인 존 킹이 24일 집행된 가운데, 버드의 누이인 베티 보트너가 버드의 묘소에서 연설하고 있다. 재스퍼(텍사스)=AP 연합뉴스
1989년 흑인 증오범죄로 희생당한 제임스 버드 살인사건의 범인 존 킹이 24일 집행된 가운데, 버드의 누이인 베티 보트너가 버드의 묘소에서 연설하고 있다. 재스퍼(텍사스)=AP 연합뉴스

“드디어 정의가 구현됐다.” 20년 넘게 묵은 원한이 씻겨나가는 듯 희생자의 가족이 내뱉은 한 마디였다.

1998년 흑인을 상대한 증오 범죄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았던 존 윌리엄 킹의 사형이 2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헌츠빌에서 집행됐다. AP통신은 “오후 7시 킹에게 약물 주사가 집행됐다”고 보도했다. 킹은 1998년 6월 흑인 제임스 버드 주니어를 폭행하고 트럭 뒤에 매달고 달려 결국 숨지게 한 혐의로 공범 두 명과 함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형 집행을 하루 앞두고 변호사가 “킹은 무고하다”며 최후 탄원을 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이 사건의 여파로 미국 사회에서 쉬쉬해 왔던 인종 차별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범행 수법이 끔찍할뿐더러 킹이 공공연하게 쿠클럭스클랜(KKK)과 나치, 남부연합을 찬양하는 행위를 보여왔기 때문에 미국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게다가 킹은 백인 우월주의자 집단인 ‘미국기사연합(CKA)’의 고위층을 자처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버드 살인 사건 이전 절도죄로 감옥에 수감됐던 킹은 “흑인을 납치해 살해할 멤버들을 찾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이 사건에 배정된 배심원들은 킹의 유죄를 두 시간 반 만에 결정했다. 검찰의 노력도 한몫 했다. 검찰은 킹의 증오 범죄 행위를 증언할 증인 43명을 소환했고 버드가 트럭 뒤에 매달려 끌려 다닌 3마일(약 4.8㎞)을 영상으로 촬영해 법정에서 상영했다. 발견된 버드의 시신 곳곳에는 학대의 흔적이 역력했다. 킹은 법정 증언을 거부했고 킹의 변호사마저 유죄를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버드의 희생은 이후 곳곳에서 결실을 맺었다. 2001년 당시 릭 페리(공화) 텍사스 주지사는 증오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이른바 ‘버드 법’에 서명했다. 이런 내용의 법은 2009년 연방 의회에서도 통과됐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럭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버드의 가족은 이번 사형 집행을 놓고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버드의 누이인 베티 보트너는 사형 집행 직후 CNN에 “이미 용서했다”고 말했다. 버드의 아들인 로스 역시 “살인에 살인으로 앙갚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딸인 르네 역시 “사형보다는 종신형이 더 적합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흑인 사회는 “아직도 증오는 여전하다”는 입장이다. 버드의 무덤은 두 번이나 훼손당했다고 가족들은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누군가 묘비를 발로 걷어차 쓰러지기도 했고 인종차별적인 낙서로 도배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증언이다. 현재 버드의 무덤은 자물쇠로 잠긴 문 안에 보호받고 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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