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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퀸 키운 요람인데… 클럽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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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퀸 키운 요람인데… 클럽은 억울하다

입력
2019.05.01 14:00
수정
2019.05.02 10:57
23면
0 0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 조명 ‘에너지 플래시’ 전

클럽이 지닌 치유적 기능을 조명한 ‘댄스 테라피’. 현대카드 제공
클럽이 지닌 치유적 기능을 조명한 ‘댄스 테라피’. 현대카드 제공

1961년 영국의 유명 항구 도시 리버풀의 매슈 스트리트. 라이브 클럽 캐번에 점심 시간 짬을 내 밴드의 공연을 즐기려는 직장인들이 몰렸다. 당시 이 클럽에선 점심 공연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도심에서 직장인들의 점심을 로큰롤로 달군 주인공은 밴드 비틀스였다.

◇직장인 안식처 ‘비틀스 클럽 점심 공연’

비틀스는 점심 공연 무대에 100번 넘게 섰고, 마지막 곡으로 노래 ‘아이 윌’(‘아이 윌’은 1968년발표. ‘아일 비 백’으로 추정됨)을 주로 불렀다. “ ‘아이 윌’이 나오면 점심 끝났으니 ‘직장으로 돌아가자’라고 생각했죠.” 프레다 켈리가 6년 전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프레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틀스’를 상영할 때 한국을 찾아 들려준 얘기였다.

캐번은 ‘비틀스의 요람’이다. ‘비틀스의 다섯 번째 멤버’로 불렸던 밴드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담배 연기가 뿌연 동굴 같은 클럽에서 연주하던 비틀스를 1961년 가을에 처음 보고 계약을 맺었다. 비틀스뿐 아니라 밴드 퀸과 프랑스의 세계적인 DJ 데이비드 게타 등이 모두 클럽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버닝썬 사태’로 ‘약물 천국’이라며 세상의 손가락질을 요즘 받고 있지만, 클럽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 새 문화가 꽃피는 공간이었다.

간이 화장실 콘셉트로 제작된 음악 공간 설치물. 현대카드 제공
간이 화장실 콘셉트로 제작된 음악 공간 설치물. 현대카드 제공

◇이태원에 들어선 ‘클럽 박물관’

“워즈 라이크 바이올런스(Words like violence)”. 건물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자 1980년대를 풍미한 영국 밴드 디페시 모드의 히트곡 ‘인조이 더 사일런스’의 비트가 귓전을 때린다.

지난달 23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전시장 현대카드 스토리지. ‘굿 나이트: 에너지 플래시’란 주제로 꾸려진 전시 공간은 ‘클럽 박물관’ 같다. 영국과 미국에서 1960년대 시작된 클럽 문화의 생생한 숨결을 담은 작품을 비롯해 홍대를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뿌리 내린 국내 클럽의 흔적이 가득하다. 지난달 18일 시작해 8월 25일까지 열릴 ‘굿 나이트: 에너지 플래시’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다양한 하위문화를 만들고 사회적 소통의 공간이 된 걸 보여주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한국인 DJ 페기 구 등 국내외 아티스트 17개 팀이 50여 작품을 선보인다.

클럽이 모두 술집은 아니었다. 한 때 동굴이 클럽의 공간으로 유행했다. 전시장 초입 진열대엔 ‘Cave Rave’(케이브 레이브)라 적힌 표들이 놓여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가지 영국 북서부 관광 명소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유행했던 동굴 파티의 흔적들이다. ‘케이브 레이브’를 보도한 TV 뉴스 영상도 나왔다. ‘케이브 레이브’를 직접 경험한 작가 맷 스토크스가 전시를 꾸렸다. 그는 최근 전시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워낙 외곽이라 클럽이 없었다”며 사람들이 동굴에서 음악을 즐겼다고 했다. 음악으로 서로의 연대를 확인하는 공간을 향한 청년들의 열망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토크스는 “부자이든 아니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여기(동굴 클럽)에선 모두가 평등하고 똑같은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전시장 벽엔 ‘클럽은 단지 쾌락의 천국이 아니라 커뮤니티 내 결속을 다지기 위한 공간’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와 작업하고 미국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유명 멀티미디어 창작 집단 어슘 비비드 아스트로 포커스의 언급이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장 벽엔 클럽에서 열린 공연 홍보 전단이 붙어 있다. 현대카드 제공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장 벽엔 클럽에서 열린 공연 홍보 전단이 붙어 있다. 현대카드 제공

전시장엔 노란색 ‘간이 화장실’도 세워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스크린에 홀로그램으로 DJ의 공연 장면이 나오고, 천장엔 헤드폰이 매달려 있다. 내재된 욕망을 배출하고 타인과 함께 즐기면서도 내 안의 즐거움을 찾는 클럽을 ‘1인 화장실’에 빗댄 설치물로 해석된다.

클럽에서 추는 춤은 그저 퇴폐적 행위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약이 된다.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담긴 영상물 ‘댄스 테라피’엔 활기가 가득하다. 작가 로테 앤더슨은 “클럽이라고 해서 다 어둡지 않다”라며 “클럽이 가진 밝고 자유로우며 때론 순수한 이미지를 담으려 했다”고 기획 의도를 들려줬다. ‘DON’T JUDGE IT TILL YOU HAVE EXPERIENCED’(경험하기 전에 판단하지마). 전시장엔 한 클럽의 형광 표어 사진이 붉게 빛났다. ‘버닝썬’으로 훼손된 클럽의 문화적 가치 회복을 위한 아우성 같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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