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합정동에 첫 선 보인 ‘마르쉐 채소시장@합정’
2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무대륙에서 열린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을 방문한 김호윤 셰프가 4월에만 나오는 제철 채소들을 둘러보면서 농부와 대화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헤어리베치가 나왔네요. 어떻게 기르셨어요? 어떻게 요리해 먹어요?”(김호윤 셰프)

“어딘가에서 날아온 씨앗이 밭에 싹을 틔워 이렇게 잘 자라줬어요. 그냥 드셔도 되고, 유자 드레싱을 뿌려도 부드러운 맛이 나요.”(남경숙 ‘풀풀농장’ 대표)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의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스와니예’ 출신인 김호윤 셰프(현재 레스토랑 RIPE 셰프)가 23일 서울 합정동 복합문화공간 무대륙에서 열린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을 찾았다. 평소 다양한 식재료를 찾아 다닌다는 김 셰프는 이날 남 대표가 재배한 헤어리베치 한 움큼과 자연산 대파를 샀다. 김 셰프의 목소리 한껏 들떠 있었다. 그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요리의 기본인데 마트에는 사시사철 나오는 식재료 일색”이라며“오늘처럼 농부들을 만나 재배 방법을 알고 채소를 쓰면 가장 맛있는 제철 요리를 할 수 있다”고 즐거워했다.

2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무대륙에서 열린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을 방문한 이보은 요리연구가가 충남 논산의 ‘꽃비원’에서 가져온 제철 채소의 향을 맡아보고 있다. 이한호 기자

‘마르쉐 채소시장’은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농가에서 자연농법으로 기른 제철 채소를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설명하고, 판매하는 친환경 직거래 장터다.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을 모토로 서울 곳곳에서 도시형 장터를 운영하는 모임 ‘마르쉐at’가 주관한다. 채소만으로 장터를 꾸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장터에 참여한 농장20곳은 대부분 마트에 입점하지 않고 직거래 장터나 소규모 레스토랑, 소비자와 계약을 맺고 농작물을 판매한다. 농부들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와일드 베리, 펜넬, 광대나물, 오갈피순, 찔레순, 조동지쌀, 돼지감자, 래디시, 목이버섯, 헤어리베치, 민들레, 허브 등 여느 마트와 시장에서 보기 힘든 식재료 수백 종을 선보였다. 장이 열리고 한시간쯤 만에 빈 매대가 나올 정도로 장터는 성황이었다. 획일화된 식재료를 벗어나고 싶은 셰프와 소비자들의 욕망이 그 만큼 컸다는 뜻이다.

2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무대륙에 마련된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에 소농가에서 선보이는 각종 들풀과 제철 채소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강지원 기자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에 ‘풀풀농장’은 제철 채소(왼쪽)를 ‘들풀한아름’은 광대나물 등 들풀과 효소발효액(오른쪽) 등을 선보였다.

경기 남양주 ‘준혁이네 농장’의 이장욱 대표가 준비한 딸기와 들풀들은 30분만에 매진됐다. 이 대표는 23년간 제철 채소만 경작해 온 베테랑으로, 한해 200여종을 생산한다.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희귀 품종을 중심으로 기르고, 새로운 맛을 내는 작물에 끊임 없이 도전한다. 그는 ‘스타 셰프가 믿고 사는 스타 농부’다. 김호윤 셰프뿐 아니라 권우중(미쉐린 2스타 ‘권숙수’), 강민구(미쉐린 1스타 ‘밍글스’), 신창호(미쉐린 1스타 ‘주옥’), 이지원(미쉐린 가이드 ‘오프레’), 정승기(미쉐린 빕구르망 ‘리틀앤머치’) 셰프 등 톱셰프 18명에게 식재료를 공급한다. 이 대표는 “크거나 보기 좋지 않아도 건강하게 길러 제 맛을 내는 채소들을 알아보는 소비자와 요리사들을 만나 반갑다”며 “양심을 지키며 농사 짓는 농부들이 늘어나려면 이런 채소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무대륙에서 열린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을 방문한 김호윤 셰프가 ‘들풀한아름’의 김진은 대표와 들풀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날 시장의 최연소 농부인 김진은(22)ㆍ김진원(16) 자매(‘들풀한아름’ 농장)는 경기 하남시집 근처 산과 밭에서 갖가지 들풀을 채집하고 재배한다. 둘은 백목련, 생강나무 가지, 광대나물, 오갈피순 등 매년 4월에만 나는 들풀들을 신나게 소개했다. 이들은 “다양한 풀과 꽃이 나는 환경에서 자라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하다 농부가 됐다”며 “익숙하지 않은 맛이지만 이런 풀도 먹을 수 있고, 또 맛있기도 하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풀풀농장’의 이연진, 남경숙 부부도 헤어리베치와 민들레 등 들풀과 자연산 월동 대파, 조동지쌀 등 준비한 채소를 전부 팔았다. 부부는 “마트에 가면 늘 먹던 것만 고르지만 시장에 오면 새로운 재료들에 호기심이 생긴다”며 “소비자는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어서 좋고, 농부들은 이런 재료들을 알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강지민(왼쪽에서 세 번째) 달키친 셰프가 23일 서울 합정동 무대륙에 마련된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에서 시장에 나온 재료들로 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강지원 기자

이보은 요리연구가, 문성희 요리연구가, 신민섭 ‘루블랑’ 셰프, 장준우 셰프, 나카가와 히데코 요리연구가 등도 시장을 방문했다. 셰프뿐 아니라 카페 운영자, 조리학과 대학생, 출판사 직원, 주부 등 연령과 직업, 국적을 불문하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다. 카페 ‘수카라’를 운영하는 김수향씨는 “장터에 나온 들풀과 제철 채소들은 인간이 이 시기에 먹어야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식재료이지만 마트에서는 절대 찾아 볼 수 없다”며 “오늘 구입한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카페에서 판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호윤 라이프(RIPE) 셰프가 다음달까지 선보이는 ‘웰컴 디쉬’.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에 참가한 ‘준혁이네 농장’에서 기른 딸기와 유채꽃, 래디쉬, 슈가스냅 피 등이 들어갔다. 김호윤 제공

이보은 마르쉐 상임이사는 “사람들이 ‘새벽 배송’ 같은 편리한 시스템만 원할 것 같지만, 우리 삶에는 그런 것으로 충족되지 않는 허기가 있다”며 “먹는 것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길러졌는가를 알고 장을 봐서 밥을 짓는 일상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크기 때문에 이런 장터가 호응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쉐 채소시장은 매달 네 번째 화요일에는 합정동무대륙에서, 매달 첫 번째 토요일에는 성수동 성수연방에서 열린다.

2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무대륙에서 채소를 주로 판매하는 시장인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은 다양한 제철 채소를 사려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이한호 기자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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