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황금연휴에 일어나는 일
지난해 4월 말 세미나 참석차 베트남을 찾은 서울 한 대학의 김모 교수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다시는 베트남을 찾고 싶지 않다. 호찌민시에서 공식 일정을 마치고 지인 방문차 달랏으로 가는 떤선녓공항 국내선 청사에서 생긴 일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공휴일인 통일기념일(4월 30일), 노동절(5월 1일)과 이어지는 나흘 연휴 첫날이던 토요일(28일) 오전 비행기 출발시간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체크인 카운터 줄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사람들이 붐빈 탓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키오스크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앞의 줄도 길어 탑승권을 받는데 20분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비행기 탑승을 위해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보안검색을 위한 거대한 ‘ㄹ’자 줄이 2층의 보안검색 대기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2층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서는 숨이 막혔다. 뒤에 선 사람은 물론 옆에 선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들어야 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반발짝씩 전진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김 교수는 “항공기가 지연되지 않았더라면 비행기도 타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런 공항은 난생 처음”이라고 말했다.
약 30분간의 비행 뒤에 도착한 해발고도 1,500m, ‘봄의 도시’ 달랏도 그가 듣던 것과는 달랐다.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도로는 물론 명소 곳곳이 만원을 이루면서 친절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물가도 높았다.
◇닷새짜리 연휴에 비상
한국에서 베트남이 인기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4월 말이나 5월 초가 되면 나타나는 이런 장면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정부가 오는 29일을 공휴일로 지정, 주말에 이어 통일기념일(30일), 노동절(5월 1일)까지 이어지는 5일짜리 연휴를 국민들에게 선사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여행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인상공인연합회(코참) 관계자는 “휴일이 적다 보니 베트남 정부는 징검다리 연휴인 경우 대체근무일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긴 휴식을 제공한다”며 “29일(월) 쉬는 대신 토요일인 5월 4일 근무 방침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운수, 여객 관련 기관에는 수송 대책에 비상이 걸렸다. 베트남 최대 휴가인 뗏(설) 연휴 기간에 맞먹는 수준이다. 베트남 철도청에 따르면 하노이와 호찌민시를 연결하는 1,700㎞ 구간의 남북선에 130편의 열차를 추가 편성했고, 항공당국은 “베트남항공, 비엣젯, 젯스타 등 국적 항공사들이 4월 26일부터 5월 5일까지 국내선 5만3,000석, 국제선 2만5,000석을 늘린 8,700편의 항공편을 편성해 놓고 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하노이버스터미널은 5일간의 연휴 기간 동안 급증하는 여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3,200회 추가운행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4말5초’ 연휴에 대이동을 하는 건 그만큼 여행을 다닐 수 있는 휴일이 적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는 올해 공휴일을 21일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을 뺀 명절과 법정 공휴일은 열흘에 불과하다.
◇휴일 늘려서 경제성장 견인
베트남의 휴일은 설, 추석 명절을 포함함 한국의 휴일(11개)의 절반 수준인 6개로, 대부분 상반기에 집중돼 있다. 신정을 시작으로 음력설인 뗏 연휴(5일), 한국의 단군과 비슷한 훙 왕의 기일(1일ㆍ음력 3월 10일), 통일기념일(4월 30일), 노동절(5월 1일)이 상반기 공휴일이고, 9월 2일에 있는 독립(건국)기념일이 하반기의 유일한 공휴일이다. 미국계 광고홍보 대행사에 근무하는 팜 민(29)씨는 “뗏 연휴가 1주일 이상이지만 가족 친지 인사를 돌다 보면 별도 여행은 힘들다”며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4말5초’ 연휴에 가족여행 계획을 세운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정부가 이달 29일을 휴무일로 지정해 국민들의 여행을 지원하는 건 관광산업 발전과 내수 진작을 위해서다. 이를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이번 연휴를 앞두고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기관을 통해 호텔과 쇼핑몰, 유명관광지 등에 바가지 요금 등에 대한 철저한 감독과 안전사고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지시했다.
이와 관련, 코트라 하노이 무역관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GDP) 1만달러 전까지는 저축을 장려하고 그 돈을 기업에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에 집중했지만 1인당 GDP가 2,500달러 수준인 베트남이 이 같은 방법을 쓰는 것은 다소 이른 감이 있다”면서도 “소비 증가에 따른 경제 효과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휴일 더 늘리자”
익명을 요구한 현지 매체의 한 기자는 “정부는 세계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 외국인직접투자(FDI)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 대안의 하나로 관광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베트남이 속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의 GDP 성장률이 2017년 6.2%에서 지난해(5.9%) 6% 밑으로 꺾인 데 이어 올해 5.7%, 내년 5.6%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치를 내놓았다. 성장률 저하가 예상되는 만큼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FDI 축소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베트남에서는 최근 현행 10일인 공휴일을 11일로 늘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노동부와 보훈처 등이 7월 27일을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전사자 기념일’로 지정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베트남 국민들도 즉각 반겼다. 부족한 휴일 문제와는 별개로 다른 나라들이 비슷한 기념일을 공휴일로 두고 있는 만큼 근ㆍ현대사가 전쟁의 역사나 다름없는 베트남으로서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하노이ㆍ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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