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툭’ 이른 새벽 꽃잎 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바람 끝이 아직 쌀쌀하던 어느 날 목련꽃 봉오리와 함께 돋아난 봄이었다. 그 봄이 벌써 가려나 보다. 야속하게 내리는 비마저 이 도톰한 꽃잎의 낙하를 거든다. 길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봄의 기억들.
햇볕 아래 꽃봉오리가 활짝 열릴 때 마치 나무 위에 하얀 구름이 핀 듯 아름다웠다. 하지만 떠들썩한 봄꽃들의 축제가 벌어지자 사람들은 목련을 외면했다. 벚꽃의 화사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작고 얇은 꽃잎이 바람에 흩어질 때마다 탄성을 쏟아냈다.
발길에 치이는 꽃잎이 질려갈 무렵 목련은 그늘진 아파트 보행로에 커다란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빗자루를 비껴든 경비 아저씨만 목련의 낙화를 주시했다. 수시로 쓸어 담아 화단에 뿌리고, 돌아서면 또다시 수북이 쌓이는 하얀 꽃잎의 무덤.
목련의 꽃은 피고 지는 모습이 너무 달라 애틋하다. 시인 이해인이 ‘한 송이 시’라고 표현했던 겸허한 아름다움을 져버린 꽃잎에선 찾아볼 수 없다. 밟히고 짓이겨진 뒤끝은 ‘고귀함’이라는 꽃말과 어울리지 않게 지저분하다. 그러고 보니 ‘꽃 길’이라고 다 예쁜 건 아닌가 보다.
꽃잎치고는 꽤나 육중한 몸집 덕분에 목련의 꽃잎은 웬만한 바람에도 쉽게 흩날리지 않는다. 때가 되면 피었던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뿐. 무기력하게 포개진 채로 나뒹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노란색으로, 갈색으로 변해간다. 그 위로 이어지는 무심한 발걸음, 개 걸음, 자전거의 바퀴들. 아이 손바닥만 한 꽃잎마다 그렇게 한 가지씩 무늬가 입혀졌다.
봄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길, 하얗게 떨어진 백목련 꽃잎에서도 아직 고운 빛깔이 남아 있는 자목련 꽃잎에서도 기하학적인 문명의 패턴이 눈에 띈다. 누군가의 발자국에 눌린 꽃잎은 따로 떼어 늘어놓은 신발 밑창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모양새였다는 듯 자연스럽게. 가는 봄이 아쉬운 나는 목련 꽃잎 아니, 꽃잎 위에 사뿐히 남겨둔 발자국을 따라 멀어지는 봄을 하염없이 뒤쫓는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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