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아랍의 봄’ 민주화 열기가 사그라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는 23일(현지시간) 헌법 개정안이 지난 20∼22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88.83%의 찬성으로 가결됐다고 발표했다고 알아흐람 등 현지언론들이 보도했다. 투표율은 44.33%로 집계됐다. 개헌안은 지난 16일 의회를 통과한 데 이어 국민투표에서도 유효표의 과반 찬성을 얻음으로써 효력을 발휘하게 됐다.
개헌안의 핵심은 대통령의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연임 제한 조항도 완화한 것이다. 작년 3월 재선에 성공한 엘시시 대통령의 임기는 애초 2022년까지였으나, 헌법 개정으로 임기가 2024년까지 연장됐고 차기 대선에서도 승리하면 2030년까지 합법적으로 집권할 수 있게 됐다.
개헌안은 또 군대의 역할을 국가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헌법 및 민주주의 수호 등으로 강화했다. 개헌안에는 부통령직을 신설하고 의회 하원 의석의 25%를 여성에 배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고 군부 권한을 강화한 개헌안은 8년 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흔든 아랍의 봄 민주화 열기에 역행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30년간 이집트를 철권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2011년 초 거센 민주화 시위에 직면해 물러났고, 그 해 3월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4년으로 줄이고 연임을 한차례로 제한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됐다.
이는 제2의 무바라크와 같은 독재자를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번 개헌으로 다시 시민혁명 전으로 돌아간 셈이 됐다. 장기집권을 노리는 엘시시 대통령은 군인 출신 지도자다. 엘시시는 국방부 장관이었던 2013년 7월 이집트의 첫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를 축출하는 데 앞장섰고 2014년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올랐다. 엘시시는 집권한 뒤 이슬람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등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어왔다. 특히 2017년 4월부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 등을 이유로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하고 있다.
엘시시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하는 개헌안이 손쉽게 국민투표를 통과했지만, 유권자들의 참여는 그리 뜨겁지 않았다. 이번 국민투표 투표율은 작년 3월 대선 당시 41%보다 3%포인트 높지만 여전히 50%를 밑돌았다. 지하철 요금과 휘발유 가격 등 물가 급등과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투표율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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