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어음을 이용한 부당대출 여부를 놓고 논란을 샀던 한국투자증권(한투)에 대한 최종 제재를 두고 금융당국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투 사건에 대한 장고 여파가 최근 발행어음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KB증권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한투 발행어음 부당대출에 대한 과태료 수위를 정할 예정이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안건을 보류했다.
앞서 지난 3일 금융감독원은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열고 한투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개인에게 대출한 것으로 판단, 관련 임직원에 대한 주의~감봉 처분 및 기관 과태료 5,000만원 부과를 의결했다. 자본시장법상 발행어음 자금의 개인대출은 불법이다. 이중 과태료 부과는 증선위와 금융위 정례회의를 거쳐야 확정된다.
증선위에서 결론이 미뤄진 데는 일부 사실관계를 놓고 금감원과 한투 간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증선위가 양측에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다음달 8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통상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금감원 제재심 단계에서 정리되곤 하는데 이번엔 증선위 단계에서 또 다시 한투와 금감원이 맞붙는 모양새가 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만 증선위원들이 과태료 수위를 놓고 과하다고 지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한투 제재 방안을 두고 금감원은 당초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염두에 뒀으나 지난달 금융위 자문기구인 법령해석심의위원회가 한투의 거래 방식이 법 위반으로 보기 힘들다고 결론 내리면서 결국엔 경징계 수준으로 의견이 모였다. ‘1호 발행어음 사업자’라는 한투의 상징성 탓에 인가를 내준 금융위가 강한 제재를 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한투의 제재 결론이 쉽게 매듭을 짓지 못하면서, 발행어음 사업을 신청한 또 다른 증권사인 KB증권도 영향을 받는 형국이다. 19일 증선위는 지난 12월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신청한 KB증권의 통과 여부도 논의하기로 했으나 마찬가지로 보류됐다. KB증권 관계자는 “증선위로부터 특별한 이유를 설명 받진 못했다”고 말했다.
KB증권은 2017년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했다가 과거 인수ㆍ합병했던 현대증권의 자전거래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1월 자진 철회한 뒤, 문제 해결하고 지난해 12월 재도전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장기간 사업을 준비한 KB증권의 인가가 무난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발행어음 사업으로 문제가 됐던 한투의 제재 논의가 같은 날 있었던 터라 당국이 추가 사업자 인가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KB증권 인가는 추가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었고, 증선위원 구성이 불완전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증선위원은 5명이 정원이지만 현재 상임ㆍ비상임위원이 1명씩 공석 상태라 3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3명만 있어도 안건을 심의ㆍ의결할 수 있지만 충분한 논의를 하기엔 미흡하다는 것이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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