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할미꽃

화사하던 벚꽃 잎도 바람에 흩날리며, 봄은 참 빨리도 갑니다. 이 봄에 세상에 나온 여릿여릿 말랑말랑한 새싹들도 성장을 위해 열심히 광합성을 하며 더욱 짙어질 것이고, 햇볕, 바람과 같은 다양한 환경들을 겪으며 더 굳고 단단해지겠지요. 때론 도심의 먼지나 오염물이 묻어 숨구멍이 막히고 때 묻은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란꽃이 피는 할미꽃

이른 봄부터 솜털 보송하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우리를 오래오래 흐뭇하게 해주는 연한 봄꽃이면서도 나이 든 할머니로 대우받는 꽃이 있는데 바로 할미꽃입니다. 국립수목원엔 몇 해 전, 피라미드형 삼각 온실 주변을 정비하면서 식물과 사람을 좀 더 가까이 만나게 해드리고 싶어 그사이를 가로막던 회양목을 치우고 콘크리트 축대를 돌러 쌓아 올려서 그 틈새에 식물을 심었습니다. 몇 가지 식물을 심었지만 양지바른 탓인지 유독 할미꽃이 잘 자리 잡아서 매년 여러 포기가 꽃을 피워냅니다. 할미꽃을 발견하신 분들은 대부분 고향 집 뒷동산 혹은 산소가장자리에 자라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꽃이어서인지 모두 반갑고 행복해하시지요.

할미꽃 열매(양형호)

동요에는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하여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꽃줄기가 꼬부라져 꽃송이가 아래를 향해 피어나서 붙은 이름이려니 싶으시지만 그보다는 열매의 모습 때문인 듯합니다. 한자로 할미꽃을 백두옹(白頭翁)이라고 하고, 중국에선 특히 우리나라 할미꽃을 조선백두옹이라고 하는데, 이는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기 쉽게 씨앗에 남아 달린 긴 암술대에 퍼진 털이 마치 깃털처럼 줄지어 달리고, 이들이 둥글게 모여 하얀 할머니의 머리처럼 보여서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의 흰 머리카락이 삶과 가족을 위한 노고의 흔적이듯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후손을 널리 퍼트리기 위한 노력의 모습이지요. 그러니 막 피어난 꽃송이들에게 처음부터 할머니라고 부르면 좀 억울할 듯도 합니다. 그 꽃들을 가만히 들어서 안쪽을 보면 밝은 자줏빛의 아름다운 꽃잎과 잘 조화를 이루는 강렬한 노란 수술들이 눈 안에 들어옵니다. 정말 깊은 정열이 숨어있다 느껴집니다. 꼬부라진 모습에 더없이 부드러운 솜털을 가득 달고 있는 따뜻하고 정다운 할머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고 보면 꽃이나 사람이나 혹은 그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나 이름이 참 중요하다 싶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 스스로가 이름에 가려, 일부분만 보고 속단하여, 혹은 선입견에 가려 진짜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사는 오늘의 일상에서 작은 반목이나 심지어 극한 갈등들도 시작은 작은 오해 혹은 선입견에 갇혀 깊어진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 모습 속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아름다움과 열정은 살아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듯도 싶고요.

할미꽃

세계적으로는 빛깔도 모습도 조금씩 다른 30종류 정도의 할미꽃 집안 식구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꼬부라진 할미꽃 집안들은 그리 많지 않지요. 우리나라에도 귀한 종류가 좀 더 있는데 연노란 꽃이 피는 노랑할미꽃, 북쪽이 고향인 분홍할미꽃 그리고 동강할미꽃입니다. 특히 동강할미꽃은 그 유명한 동강에서 발견되었는데, 귀하기도 하고 연보랏빛 꽃송이들이 곱기도 고와 식물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봄이면 이 꽃을 만나러 카메라를 메고 동강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너무 지대한관심과 사랑 속에서 훼손을 당하는 일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큰 군락지가 새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니 다행이다 싶네요.

이 귀한 꽃들이 꼭 보고 싶으시다면 저희 국립수목원을 비롯하여 몇몇 식물원을 찾아보세요. 수목원이나 식물원이 공원과 다른 점은, 식물들을 현지 외 보전하여 증식, 관리하고 있는 것이니 풍성하게 키워놓은 모습을 자생지까지 가서 찾아 헤매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꽃으로 가득하여 행복한 봄날이시길 바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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