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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버닝썬 ‘만수르 세트’의 그 샴페인

입력
2019.04.24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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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매주 수요일 <한국일보> 에 찾아 옵니다. 2018년 한국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부문 우승자인 시대의창 출판사 김성실 대표가 글을 씁니다.

여러 종류의 아르망 드 브리냑. 아르망 드 브리냑 홈페이지
여러 종류의 아르망 드 브리냑. 아르망 드 브리냑 홈페이지

샴페인은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을 말한다. 와인은 효모가 포도의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발효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포가 없는 스틸 와인은 이산화탄소는 날려 보내고 알코올만 남긴 것인데, 기포가 있는 스파클링 와인은 알코올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까지 병에 잡아 가둬 놓은 것이다. 이를 위해 병에서 다시 한 번 발효를 한다. 그렇기에 샴페인은 스틸 와인보다 훨씬 복잡한 공정(이를 샴페인 방식이라 한다)을 거쳐 만들어진다. 샴페인이 비싼 이유이다.

최근 샴페인 하나가 세간에 오르내렸다. ‘아르망 드 브리냑.’ 필자가 이 샴페인을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소믈리에 대회를 준비하면서였다. 대표적인 샴페인하우스와 그곳의 프레스티지 퀴베 샴페인(최상급 샴페인)을 연결 짓는 문제는 단골로 출제되기에 적어도 샴페인 100개 정도는 외워야 했다. 업장에서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소믈리에와 어드바이저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문제였다. 사실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최고급 샴페인을 사진으로만 맛보며 외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일부 샴페인 애호가만 아는 ‘아르망 드 브리냑’이 버닝썬 덕분(?)에 한 대형 마트의 G7 와인만큼이나 널리 알려졌다.

버닝썬 VVIP 메뉴에 포함된 아르망 드 브리냑. 인터넷 화면 캡처
버닝썬 VVIP 메뉴에 포함된 아르망 드 브리냑. 인터넷 화면 캡처

사실 아르망 드 브리냑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건은 따로 있다. 힙합가수이자 비욘세의 남편으로 알려진 제이지(Jay-Z)와 관련한 일화다. 제이지는 평소 동료들과 함께 샴페인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는 특히 루이 로드레 사가 만든 최상급 샴페인인 크리스탈을 즐겨 마셨는데, 과거 이 샴페인은 (병 아래 움푹 들어간) 펀트가 없는 투명한 병에 담겨 러시아 황제에게만 공급돼 최고급 샴페인의 상징이자 ‘황제의 샴페인’으로 여겨졌다. 제이지의 크리스탈 사랑은 대단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랩 가사에도 ‘크리스탈’을 여러 번 썼고, 뮤직비디오에선 반라의 여성에게 크리스탈을 내리 붓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

제이지가 한떄 즐겼던 크리스탈 샴페인. 위키미디어 제공
제이지가 한떄 즐겼던 크리스탈 샴페인. 위키미디어 제공

어느 날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크리스탈 샴페인 관리자인 프레데릭 루조(현 사장)의 인터뷰가 발단이었다. 래퍼 사이에서 크리스탈의 인기가 대단한 것을 두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우리 샴페인을 사는 것을 말릴 수도 없고…”라고 답했다. 이 발언에 격분한 제이지는 “힙합과 힙합을 상징하는 흑인에 대한 명백한 인종차별이다”라며 성명서를 냈다. 그러고는 크리스탈 샴페인을 보이콧했다. 얼마 뒤 제이지는 ‘쇼 미 왓 유 갓 Show Me What You Got’뮤직비디오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바로 아르망 드 브리냑이 등장한다. 그가 크리스탈 샴페인을 거부하자 스페이드 에이스가 장식된 황금빛 병의 아르망 드 브리냑을 가져오는 장면이 나온다. 제이지가 두 손으로 바로 그 스페이드를 형상화하면서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제이지가 뮤직비디오에서 아르망 드 브리냑을 들고 있는 모습. 인터넷 화면 캡처
제이지가 뮤직비디오에서 아르망 드 브리냑을 들고 있는 모습. 인터넷 화면 캡처

곧 아르망 드 브리냑은 ‘대박’이 난다. 덧붙이자면, 제이지는 2014년에 아르망 드 브리냑을 ‘거절하기 힘든 조건’으로 인수했다. 갑자기 등장한 샴페인을 두고 와인 애호가들 역시 반신반의했으나, 철저한 ‘마케팅’으로 이름을 떨친 아르망 드 브리냑은 이후,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1위를 한다. 맛으로도 최고급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2019년의 한국인들은 한 해에 4,000케이스만 생산한다는 아르망 드 브리냑을 비록 실물은 아니었지만 맛볼 수 있었다. 버닝썬 메뉴판의 ‘만수르 세트’에서. ‘인종차별’에 ‘버닝’한 제이지가 샴페인하우스까지 인수해 버린 ‘리스펙한 스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샴페인 세트 값으로 ‘1억’을 붙인 한 인간의 처절한 ‘승리’를 엿볼 수는 있었다. 자신의 샴페인이 이 정도로 ‘값지다’는 사실을 제이지가 알게 된다면…, 그는 버닝썬을 버~언…, 어떻게 해버렸을까? 사실 소믈리에를 꿈꾸는 전국의 수많은 지망생들은 사진과 글로만 최고급 와인을 맛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샴페인이나 맛볼 것이지…, 아 진짜, 스왝 없게시리….

시대의 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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