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과학관은 꼭 바닷가에 있어야만 하는 건가요?”
24일 오후 충북 청주시 도심 성안길에서 해양과학관 충북 유치 운동에 서명을 하던 이종석(36·회사원)씨는 이렇게 반문했다. 어릴 적 바다를 동경했다는 그는 “청주에 해양과학관을 건립해 내륙의 청소년에게도 바다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명지를 건네던 이설호 충북도 농정기획팀장은 “영국 프랑스 캐나다 같은 전통적인 해양 강국들도 내륙에 해양박물관을 만들어 전 국민이 고루 해양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고 거들었다.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도’ 충북이 해양과학관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다.
충북도는 지난달 미래해양과학관 유치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해양과학관 유치를 범도민 운동으로 펼치고 있다. 최근엔 도내 전역에서 100만인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서명 운동은 정부 세종청사와 여의도 등지로 무대를 넓히며 국민적 공감대를 쌓아가고 있다.
충북의 도전은 ‘바다가 없는 곳에 바다를 달라’는 역발상에서 시작됐다.
충북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70여년 동안 국가 해양정책에서 철저히 소외된 탓에 도민들의 상실감이 크다고 도는 주장한다.
충북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양관련 시설이 단 하나도 없는 곳이다. 전국에는 국·공립 과학관과 박물관 등 해양 문화시설이 57개소나 건립돼 운영 중이다. 바다와 꽤 멀리 떨어진 지역도 적어도 한 두 개 해양관련 시설을 갖고 있다. 유독 충북에만 한 곳도 없다. 이렇다 보니 충북의 청소년들은 해양과학을 배우고 체험하고 싶어도 그런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는 심각한 지역 불균형의 문제라는 것이 충북의 주장이다. 오히려 국가 해양정책에서 소외받는 내륙권 주민들에게 해양을 접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강명 충북도 농업정책과장은 “헌법에 보장(행복추구권, 평등권)된 대로 충북도민도 해양시설을 가질 권리가 있고, 국가는 내륙 주민에게 해양시설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충북의 해양과학관 유치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0년 ‘해양수산문화체험관’이란 이름으로 첫 도전에 나섰지만, 정부의 예비타당성 대상 사업 심사에서 탈락하며 유치에 실패했다. 이어 ‘청주 해양과학관’으로 도전한 2017년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B/C(비용대비편익)가 낮게 나와 다시 분루를 삼켰다.
정부는 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계획과 2차 해양수산발전기본계획법에 따라 선진 해양강국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양수산부는 남해, 서해, 동해, 수도권, 내륙권 등 5개 권역에 미래 해양과학관을 건립, 해양강국으로 나아가는 교두보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충북도는 이 가운데 내륙권 해양과학관을 유치하겠다며 ‘삼 세 번’ 도전에 나선 것이다.
미래 해양과학관 청사진은 진작부터 마련해놓았다. 도는 해양역사, 문화 등 과거형 콘텐츠 대신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미래지향적인 콘텐츠를 갖춘 과학관을 계획하고 있다. 단순한 교육시설 기능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이 미래 해양과학을 다양하게 체험하는 공간으로 꾸밀 참이다. 또한 충북만이 아닌 대전, 세종, 천안 등 충청내륙권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 해양문화 시설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이런 취지를 살려 건립 부지는 충청권의 한 가운데 자리한 청주시 청원구 밀레니엄 타운으로 확정했다.
충북도는 모두 1,150억 원(국비 1,068억 원, 지방비 82억 원)을 들여 밀레니엄 타운 내 1만 5,400㎡에 연면적 1만 5,100㎡(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해양과학관을 지을 계획이다. 완공 목표는 2024년이다. 중생대 바다 화석인 암모나이트 형상으로 설계된 과학관은 5개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 직업체험관 등으로 구성된다.
해양생태관에서는 4D로 해양기후를 체험할 수 있고, 해저체험관에선 심해잠수정을 통해 바다 밑 세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생명과학과 바다의 자원을 융복합한 해양바이오관, 복합영상으로 가상현실(VR)을 체험하는 해양어드벤처관, 국내외 해양로봇의 최신정보를 제공하는 해양로봇관 등도 들어선다.
우주행성의 생태과학을 보여주는 특별관은 최신 콘텐츠를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도록 가변형 구조로 운영된다. 어린이에게 해양에 대한 호기심과 꿈을 전하는 키즈존도 설치된다.
도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의뢰한 사전 연구용역에 따르면 이 해양과학관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2,018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802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용유발 효과는 1,632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과학관을 운영하면 생산유발 291억 원, 부가가치 133억 원, 고용창출 443명의 효과가 예상된다.
충북도의 이 같은 계획은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선정돼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었다. 현재 KDI의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오는 10~11월쯤 사업타당성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도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관련 인허가에 들어가 2022년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도는 이번에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를 자신하고 있다. 무엇보다 밀레니엄 타운의 입지 여건이 뛰어나서다. 이곳은 청주국제공항, KTX오송역과 5~10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충청내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교차하고 있어 전국 어디서나 교통이 편리하다. 2022년엔 천안~청주공항간 복전철이 통과한다.
인근 오송에 미래 해양산업을 이끌 바이오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진 강점도 있다.
이용 가능 인구도 수백만 명을 헤아린다. 청주와 대전, 천안 등 충청권을 비롯해 수도권 남부, 강원 남부권, 경북 북부권 등 주민들이 1시간 30분이면 해양과학관에 도달할 수 있다. 나아가 청주공항을 활용하면 중국 등 해외 관광객 유치도 가능하다고 도는 기대한다.
이장섭 충북도 정무부지사는 “충북의 미래 해양과학관이 프랑스 파리 국립해양박물관, 캐나다 몬트리올 바이오돔처럼 내륙에서 바다를 접하는 이색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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