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대통령 공약과 차이 있지만 첫 걸음 내딛는 의미”
여야 4당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처리 방향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알맹이가 빠진 반쪽 합의”라는 평가가 나왔다. 판ㆍ검사와 경찰 고위직이 기소대상인 경우에만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키로 하는 절충안은 당초 제도 도입 취지에서 크게 변질됐다는 반응이다. 특정 직업군에만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전례가 없어 제도가 시행되면 상당한 혼란이 생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여야 4당은 지난주 잠정합의한대로 판사, 검사, 경무관급 경찰이 기소대상에 포함돼 있는 경우에만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는 방향으로 최종 가닥을 잡았다. 민주당이 공수처에 수사권ㆍ공소권을 동시에 줘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바른미래당이 공소권 없이 수사에만 주력하는 공수처를 고집한 끝에 찾은 절충점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절충 과정에서 공수처를 설립하려던 당초 취지가 후퇴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협회장은 “현재도 판사나 경찰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서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잘하고 있다”며 “검사들의 비위를 공수처가 수사하고 기소까지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외에는 크게 개선된 게 없다”고 평가했다. 서울고법 한 판사도 “애초에 판ㆍ검사 잡자고 도입하려던 제도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히 퇴색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했다.
공수처가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이 빠진 것을 두고도 비판이 적지 않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국회의원에 대한 기소권을 공수처에 넘기지 않으려다 보니 이런 합의가 나온 것 같다”며 “판ㆍ검사나 경찰이 거대한 비리집단이라는 인상을 고착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실무적인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기관을 설치하면서 일부만 기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라며 “같은 사건의 피의자가 검사와 국회의원이라고 가정하면 검찰과 공수처가 기소 여부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리거나, 기소를 했더라도 피고인별로 공소사실이 달라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공수처 도입을 위한 교두보 마련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시각도 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 설치가 무산되거나 기소권을 아예 주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 검찰개혁의 핵심 과제를 시행하는 합의에 도달했다는 게 중요하다”며 “향후 시행 과정에서 문제가 나오면 법을 추가로 개정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합의안 발표 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대통령과 민주당 공약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지만 일단 첫 단추를 꿰고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의미 있다”며 “각 당 의원총회에서 추인이 이뤄져 2020년 초에는 공수처가 정식 출범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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