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간) 발생한 스리랑카 연쇄 폭발 테러는 아직 그 배후도, 목적도 선명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국가인 이 나라의 소수 종교인 기독교계를 노린 공격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 지역 대부분의 나라들에는 언제든지 ‘제2, 제3의 스리랑카’와 같은 비극을 초래할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이 지역 정치인들이 세력 확장을 위해 인종적ㆍ종파적 정체성에 호소하면서, 소수 종교계 박해도 날로 심해지고 있는 탓이다.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세속주의가 갈수록 약화하고 있는 동남아, 남아시아 지역에서 ‘종교적 공존’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스리랑카 테러가 잘 보여주고 있다”면서 남아시아 일대 각국의 종교갈등 실태를 상세히 전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강화시키는 ‘주범’은 바로 정치적 주류 세력의 종교적 정체성에 기대려는 정치인들이라는 게 이 신문의 진단이다.
예컨대 최근 총선이 시작된 인도의 경우, 힌두 민족주의 성향인 집권 인도국민당(BJP)이 선거 전략으로 유권자들의 신앙을 이용하면서 오히려 종교 간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의 주요 타깃은 소수 종교인 무슬림과 기독교계 주민이다. NYT는 “종교로 구분되는 ‘우리 대 그들’의 구도를 우익 정치인들이 만들고 있다. 무슬림은 거리를 혼자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신변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독교 역시 인도에서는 과거 영국 식민주의 시대와의 상징적 연관성 때문에도 적대감에 휩싸여 있다. 인도의 가톨릭 신자는 약 2%(3,000만명)에 불과하지만, 2014년 BJP 정권 출범 이후엔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정부가 “외국 자금을 받아 활동하는 단체를 단속하겠다”는 명분하에 가톨릭 자선재단 등을 폐쇄한 게 대표적이다.
불교도가 절대 다수인 미얀마의 상황도 비슷하다. 군부가 무슬림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인종청소’ 작전이 단적인 사례다. 소수 종교계인 기독교들 사이에선 ‘로힝야 다음의 목표물은 우리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에서도 전통적인 온건파 무슬림 정치인들이 보수 진영 공략을 위해 최근 들어선 강경 입장을 택하고 있다. 그 결과, 소수 종교 탄압이 점점 거세지고 있고, 교회 수백 곳이 문을 닫기도 했다.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활동 중인 가톨릭 인권운동가 루키 페르난도는 NYT에 “스리랑카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 왔지만, 지금의 공격 규모 및 그 포악성은 과거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고 우려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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