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간의 프로농구 대장정은 ‘어우몹’(어차피 우승은 모비스)이라는 표현대로 울산 현대모비스의 우승으로 끝났다.
시즌 전 압도적인 1강으로 꼽힌 현대모비스가 이변 없이 정상에 오른 이야기는 식상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어느 때보다 흥미로웠다. ‘호랑이 선생님’ 유재학(56) 감독 아래 양동근(38), 함지훈(35) 등 모범생만 가득했던 조용한 교실에 ‘돌연변이’ 이대성(29)이 나타나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자유분방한 농구를 즐기는 이대성은 조직적인 농구를 중요시하는 유 감독과 끊임 없는 ‘밀고 당기기’를 벌였다. 경기 중 무리하게 덩크슛을 시도하다가 유 감독에게 혼쭐난 이대성은 시즌 막판 다음 시즌 자유롭게 뛸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유 감독과 대립각을 세웠다. 결국 ‘우승 시 자유이용권을 주겠다’는 유 감독의 약속을 받아낸 이대성은 챔프전 최우수선수(MVP) 수상과 함께 원했던 목표를 달성했다. 자유이용권을 획득한 이대성을 두고 양동근은 “지금도 충분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이제는 공을 두 개 들고 농구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이대성의 ‘귀여운 도발’은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유 감독을 바꿔놨다. 정규리그 막판 이대성과 자유투 대결을 할 때 이대성의 자유투를 방해하기 위해 펄쩍펄쩍 뛰었던 유 감독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유 감독은 “(이)대성이가 나를 정말 많이 바꿔놨다”며 “농구가 팬들에게 더 다가가려면 대성이처럼 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대성이의 영향으로 나도 모르게 자유투 대결 당시 그런 행동도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와 끝까지 싸운 인천 전자랜드의 창단 첫 챔프전 도전 역시 프로농구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많은 농구 팬들은 22년 만에 첫 우승을 노리는 도전자 전자랜드를 심정적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1승1패로 시리즈의 균형을 이룬 채 안방에서 치른 3, 4차전을 연거푸 내준 것이 뼈아팠다. 5차전도 전반까지 우위를 점하다가 후반에 상대의 노련함을 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래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감동랜드’라는 칭찬을 들을 자격은 충분했다. 2차전 도중 어깨를 다쳐 남은 경기 출전이 힘든 것을 직감하고 눈물을 훔친 기디 팟츠는 끝까지 동료들과 함께 하며 힘을 불어넣었다. 또 벼랑 끝에 몰린 5차전을 앞두고 선수들은 유도훈 감독에게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닙니다. 바로 포기입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 유 감독의 마음을 울렸다.
현대모비스, 전자랜드 주연의 ‘봄 농구’는 찬밥 신세가 된 프로농구의 인기를 되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6강 플레이오프부터 창원 LG가 창원체육관을 팬들의 응원 티셔츠로 노란 물결을 이룬 것을 시작으로 전주 KCC 하얀색, 전자랜드 오렌지색, 현대모비스 붉은 색 등 각 팀을 상징하는 색으로 홈 경기장을 채웠다.
흥행도 대성공이었다. 인천에서 열린 챔프 3, 4차전은 8,534명, 8,765명으로 연일 올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웠다. 플레이오프 21경기 총 관중은 10만4,718명으로 2014~15시즌 이후 네 시즌 만에 플레이오프 10만 관중을 돌파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많은 분들이 농구 인기가 바닥까지 갔다고 하지만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충분히 농구도 경쟁력이 있다고 느꼈다”며 “오랜 만에 열광적인 응원 속에 치른 플레이오프 경험은 우승한 것만큼 기쁘다”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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