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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사색] 네오파시즘이 오고 있는가

입력
2019.04.2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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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는 우익포퓰리즘 폭발

한국, ‘촛불’덕분 예외적 민주화 진행

우익포퓰리즘 막으려면 민생 해결해야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 참석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가두행진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 참석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가두행진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마키아벨리와 그람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정치사상가다. 권모술수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좌파 정치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헤게모니와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사실상 만들어 내는 등 현대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이론가다. 두 사람은 1500년대와 1900년대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둘 다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독재가 자리잡던 반동의 시대에 수난을 당하고 유배지와 감옥에서 각각 ‘군주론’과 ‘현대의 군주론’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우리의 시대가 이들의 시대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갖고 이들의 흔적을 찾아 지금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다.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세계사는 우리 시대를 무엇이라고 기억할 것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불길하지만, ‘극우 포퓰리즘 시대’로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가 몰락하면서 후쿠야마라는 학자가 “역사는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났다”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내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이로부터 25년이 되지 않은 현재, 세계의 화두는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다. 다만 1930년대의 파시즘 같은 길고 구조적인 야만의 시기, 즉 네오 파시즘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아니면 1980년대 민주화의 세계적 물결로 밀려난 1970년대의 ‘짧은 독재’의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인가가 논쟁이 되고 있을 뿐이다. 불행히도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만 하더라도 보수적인 공화당이 좌파로 보일 정도로 극우적인 트럼프가 집권했고, 영국에서도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브렉시트가 승리했다. 파시즘의 본산지로 극우세력이 다시는 등장할 것 같지 않았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후 유럽에서는 최초로 극우 정당이 연정 형태로 집권했다.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이 3등을 했다. 선진국뿐만 아니다. 브라질과 필리핀에서도 우익포퓰리스트가 집권했다. 한 분석에 따르면 포퓰리즘 세력이 집권한 나라의 인구는 2002년 1억2,000만 명에서 이제는 20억 명이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왜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복잡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 핵심에는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의해 일자리를 잃고 삶이 어려워진 낙오자, 빈곤층을 중심으로 우익 포퓰리즘에 대한 폭발적 지지가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의 당선은 지구화로 일자리를 잃은 중부의 ‘러스트벨트’와 고졸 이하 저소득 백인노동자들의 지지에 기반해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의 경우 이 같은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세계가 우익포퓰리즘으로 나가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박근혜와 최순실 덕분으로 촛불항쟁이 일어났고, 부족하지만 민주주의의 전진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분단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진보정당이 자리잡지 못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예외주의’를 이야기해 왔는데, 이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한국예외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축복은 잘못할 경우 ‘축복을 가장한 저주’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촛불에 따른 민주주의의 전진에 눈이 멀어 세계적 우익포퓰리즘의 대두에 둔감하다가 이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도 일베의 난민들에 대한 증오, 섬찟한 극우 구호 등처럼 그같은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결국 문제는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정부가 97년 경제위기 이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신자유주의에 의해 계속 악화한 민생문제를 해결한다면 한국예외주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민생문제에 대해 헛발질만 하고 있을 경우 우리도 많은 나라들처럼 우익포퓰리즘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피렌체에서)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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