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뮬러 특검 임명 때 “망했다”던 그는 특검팀의 기소 판단 유보에 “게임 끝”이라며 의기양양해했다. 하지만 특검팀 보고서에 수사 방해 시도 정황이 대거 추가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비판여론이 거세게 이는 등 러시아 스캔들 의혹은 되려 가열되는 양상이다.
미국 법무부는 18일(현지시간) 448페이지 분량의 특검 수사보고서 편집본을 의회에 제출하고 웹사이트에도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사법방해 의혹과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및 트럼프 캠프 공모 의혹 등이 정리돼 있지만, 대배심 정보와 수사ㆍ기소를 방해할 수 있는 내용 등은 제외됐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정부 해커들 사이에 공모는 없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적들과 불법 유출에 따른 수사에 좌절하고 분노했지만 뮬러 특검의 수사를 방해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개된 보고서의 곳곳에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극도로 두려워했고 이를 방해한 구체적인 정황들이 담겨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은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뮬러 특검 임명에 큰 좌절감을 보인 것에 주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5월 제프 세션스 당시 법무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채 “대통령 노릇도 여기가 마지막이다. 난 망했다”면서 극도로 두려워했다. 한달 뒤 자신의 사법방해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란 사실을 안 뒤엔 백악관 법률고문과 법무장관 대행에게 이해충돌 문제를 걸어 뮬러 특검의 해임 추진을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해 1월 마이클 플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권 교체기간 러시아 측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자 그를 경질한 뒤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에게 “(플린을 경질했으니) 넘어가자”고 압박했다. 넉달 뒤 코미 국장이 의회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 대상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며 사실상 이를 인정하자 아예 해임시켜버렸다. 옛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루를 최소화한다는 내부 방침이 있었다”고 특검에 진술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이 밖에도 세션스 전 법무장관 압박, 트럼프 타워 회동 증거 은닉 시도 등 총 10가지 사법방해 시도가 상세히 적시됐다.
뮬러 특검팀은 “사실과 적용 가능한 법적 기준에 비춰 기소 판단에 이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법방해가 없었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당장 기소할 상황은 아니지만 문제가 없는 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이 같은 애매한 결론에 사법방해 의혹을 둘러싼 공방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한 이미지를 트위터에 올리면서 “게임 종료(GAME OVER)”라고 선언했다. 또 “공모도 사법방해도 없었다” “난 뮬러를 해임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등 특검 보고서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한 것이라는 주장을 쏟아냈다.
반면 민주당은 공세의 고삐를 바짝 당길 태세다. 특히 라울 그리잘바(애리조나), 앨 그린(텍사스) 등 일부 하원의원들은 지도부의 신중론과 달리 “보고서가 충분한 증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트럼프를 물리치는 날이 선거일이 될 것이다” 등 탄핵 재추진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무죄 추정을 얻지 못했다”면서 “의회는 검열되지 않은 특검보고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뮬러가 공을 유권자들에게 넘겼다”면서 “결국 내년 대선에서 승자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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