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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대상 ‘로야’…“가족은 전쟁터에서 낙원으로 진화해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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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대상 ‘로야’…“가족은 전쟁터에서 낙원으로 진화해야해요”

입력
2019.04.19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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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야'로 19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다이앤 리 작가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무옆의자 제공
자'로야'로 19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다이앤 리 작가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무옆의자 제공

‘한국 문학’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한국어로 쓰이면? 한국 상황을 다루면? 한국 국적의 작가가 쓰면? 제19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다이앤 리 작가의 장편소설 ‘로야’는 여러 의미에서 ‘한국 소설’의 자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세계문학상 최초의 해외 거주 한인 수상자가 쓴 이 소설은 “한국 문학과 가장 먼 곳에서 찾아온 가장 가까운 이야기”(심사위원 김별아 작가)다.

소설의 ‘나’는 이란계 남편과 여덟 살 딸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평화로운 동네에 사는 40대 여성이다. 엄마를 끔찍이 사랑하는 딸은 착한 데다 총명하기까지 하고, 가부장제가 극심한 국가 출신의 남편은 유전자의 기원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다정하고 사려 깊다. 완벽하게 행복해 보이는 나의 일상에 어느 날 작은 균열이 발생한다. 딸과 수영클럽을 함께 다니던 소년이 갱단의 총기 발사로 숨지고, 뒤이어 나와 가족이 교통사고까지 당한 것. 사고로 나는 엉덩이부터 등까지 굵은 바늘을 꽂아 넣는 듯한 치명적인 고통을 얻었고, 이 고통은 오랫동안 묻어둔 어린 시절의 비극적 기억을 일깨운다. 다시 소환된 기억은 상처받은 ‘어린 나’를 대면하게 하고, 거기에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가장 두려운 존재, ‘엄마’가 있다. 나는 이 기억과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서는 고통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된다. 소설은 전쟁터 같았던 어린 시절과 낙원 같은 현재의 가족을 번갈아 보여 주며 가족으로부터 입은 상처는 결국 가족으로 치유된다고 말한다.

소설의 제목인 ‘로야’는 페르시아어로 ‘꿈’이라는 뜻이다. 작가가 꾼 꿈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제목이다. 이름, 날짜 등의 작은 디테일을 제외하고 소설의 99%가 실화에 근거했다. 리 작가는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회복한 과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소망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리 작가는 “내 안에 있는 걸 객관화시켰을 때 그걸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로야’를 읽는 독자들이 지금의 자리에서 지금과는 다른 자리로 조금 옮겨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일종의 회복 체험기인 ‘로야’는 리 작가가 태어나 처음 쓴 소설이다. 첫 소설로 리 작가는 세계문학상을 받게 됐다.

로야

다이앤 리 지음

나무옆의자 발행ㆍ288쪽ㆍ1만 3,000원

“글은 블로그에 꾸준히 써 왔어요. 한국어를 할 기회가 딸과 대화할 때밖에 없는데, 그것만으로는 생각을 체계적인 문장으로 구사하기가 어렵거든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모국어의 근간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었어요. 물론 한국어 연습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재와 대상 때문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죠.”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훈련해왔다지만, 288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써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한국어로 쓴 문장이 제대로 된 문장인지 검증해 줄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어로 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해 의미의 정확도를 파악한 뒤 한국어로 다시 쓰는 ‘3중’ 작업을 거쳤다. “운율 같은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문장이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가 저한테는 가장 중요했어요. 가끔 영어로 번역했을 때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었죠. 한국어로 표현하면 아무렇지 않은 행동인데, 영미권의 시각으로 보면 무척 무례한 행동이 되는 경우요.”

‘경계인이 쓴 소설’이라는 수식을 얻었지만, 정작 리 작가는 ‘경계’라는 말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경계를 공고히 할 뿐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경계는 담장처럼 항상 가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질적인 의미가 없죠.” 경계 자체를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리 작가는 캐나다 이주 17년 만인 2017년 대선 직후 국적을 캐나다로 바꿨다. 한국 국민으로서 ‘할 일’을 했다는 안도가 마음의 짐을 덜어줬다. “남편, 아이와 국적이 다르다 보니 비행기 좌석을 예약할 때 매번 떨어져 앉아야 한다거나, 그런 자잘한 어려움도 있었고요(웃음).”

부모에게 속해 있었던 과거의 불행한 가족과 화자가 직접 이룬 현재의 행복한 가족을 배치시켜 소설을 쓴 것은 ‘가족이 전쟁터에서 낙원으로 진화해 가야 한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가족의 변화는 ‘소통’이 전제돼야 해요. 독신가정도 자기 내면과 소통을 해야 하고요. 저는 오랫동안 엄마와 소통하지 못했어요. 소통을 결심하는 건 가족이 전쟁터에서 낙원으로 진화하는 출발점이에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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