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 모든 걸 버리고 떠나겠다는 거야?”
그렇다. 미국의 사진작가 포스터 헌팅턴은 2011년 일상을 모두 청산한다. 매일 아침 8시 정각이면 사무실에 도착해 저녁 8시가 돼야 퇴근길에 오르는 기계적 루틴 말이다. 헌팅턴은 유수 출판사 하퍼 콜린스와 패션브랜드 랄프 로렌에서 사진작가 겸 디자이너로 일했을 정도로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 주변의 만류가 적지 않았지만, 낡은 중고 밴 한 대를 사 무작정 집을 나선다. 꼬박 2년간 1만3,000㎞를 달리며 밴 안에서 먹고, 자고, 숨쉬고, 자유를 누렸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 바로 그게 핵심이라고!”
헌팅턴이 여행을 시작하며 인스타그램에 단 해시태그 ‘#Vanlife’는 현재 490만개에 달할 정도로 유행이 됐다. 그는 해시태그와 같은 이름의 책 ‘밴 라이프’에 자신을 포함해 같은 생활을 즐기는 12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부터 자녀 혹은 강아지와 함께하는 부부까지, 면면도 다양하다.
요즘 인간은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라 불린다고 했던가. 밴 라이프 주인공들은 작은 밴 하나에서 길게는 10년을 먹고 자면서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전기공이 쓰던 소형차에서 2005년 밴 라이프를 시작한 영화 감독 사이러스 베이 서턴이 대표적. 밴 라이프 첫 3년간은 영화 회사의 주차장에 밴을 세워 두고 그 안에서 잠을 해결했다. 자유로운 삶을 살며 돈을 아낀 덕분에 사이러스는 역설적이게도 임대의 굴레에서 벗어나 집을 장만하고 마당에 나무를 심을 수 있게 됐다.
주인공들은 밴 라이프를 통해 어릴 적 꿈을 실현하고, 다시 살아갈 원천을 얻고, 가족과의 유대를 확인한다. “나에게 자유로운 삶이란 한때의 유행이나 광증 같은 게 아니에요. 평생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이루는 일부였죠.”(제임스 바크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출근길을 걸을 때도, 꿈을 꿀 때도 머리와 마음으로 도로 속을 끝없이 달렸던 헌팅턴 역시 “어릴 적 친구와 도요타 자동차를 타며 누렸던 본능적 흥분, 탐험, 독립의 실감”을 밴 라이프를 통해 되찾았다.
그렇다고 밴 라이프를 향한 과도한 낭만을 키우는 것은 금물. 나에게 맞는 밴을 찾아 구입하고, 고장을 확인하고, 견인차로 옮기고, 낡은 밴을 만져 줄 전문 수리공을 섭외하고, 새 부품을 찾아 나서고… 반려동물의 신음소리만으로 소통하듯, 밴이 내는 “펑, 툭, 그르릉, 끼익”하는 소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세 알아차리는 영민함도 필요하다. 멈추고 안주해서도 안 된다. “사람들은 제가 근사한 국립공원이나 탐험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산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이런 생활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머무는 곳을 계속 바꿔가며 영감을 얻어야죠.”(사이러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에 앞서 책에 실린 수많은 사진부터 들여다보기를 추천한다. 헌팅턴이 인터뷰를 통해 일일이 받아 실은 사진들인데, 알래스카의 오로라에서부터 흙과 돌만이 가득한 캘리포니아 론파인까지, 세상엔 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인간이라는 종을 탄생시킨 생물체들의 엄청난 뒤얽힘은 이동성, 미끄러짐, 이주, 도약, 여행으로 이뤄져 있다.” 앞서 말한 ‘호모 노마드’를 기반으로 인류사를 조망한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의 말이다.
밴 라이프
포스터 헌팅턴 지음ㆍ신소희 옮김
벤치워머스 발행ㆍ276쪽ㆍ2만8,0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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