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왕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법 후 권리 구제 수단 얻어 많은 변화”
“전 ‘장애를 극복한 인권 변호사’가 아니에요. 무슨 이례적인 성공모델처럼 비춰지고 싶지 않아요. 장애는 적응하며 함께 사는 거지 극복대상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눈은 괜찮으니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대학원 졸업 무렵에야 알았다. 그 눈마저 멀고 있었음을. 하필이면 대학원 때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학문은 ‘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물학이었다. 눈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억울한 사정을 ‘귀’로 듣고, 그걸 ‘입’으로 대신 말해주면 어떨까. ‘국내 1호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재왕(41)’의 탄생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지난 17일 만난 김 변호사는 일단 고개부터 저었다. ‘장애를 극복한 변호사’라는 타이틀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국한하기 때문에 부당하다 했다. 장애인도 이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사회라면 장애를 굳이 ‘극복’씩이나 할 필요 있겠느냐는 얘기다. 변호사가 된 뒤 뜻이 맞는 동료 변호사 6명과 함께 장애인 관련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김 변호사의 이런 항변은, 당연히 우리 현실과 격차가 있다. 김 변호사 자체가 증거다. 로스쿨을 알아봤더니 시각 장애인은 풀 수 없는 토익 점수를 요구했다. 토익 점수가 필요 없는 서울대 로스쿨에 갔다. 그냥 글자로 읽어도 방대한 법전을 점자로 읽어야 했다. 나중엔 교재 전권을 음성 변환한 파일로 통째로 반복했다. 시험 때는 ‘점자 문제지’ 대신 ‘음성형 컴퓨터’를 요청, 2012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없던 전례를 만들어나간 과정이다.
김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선배 장애인들의 투쟁’에 빚졌다. 장애인단체들이 꾸준하게 요구한 끝에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다. 그 이전 ‘장애인복지법’이 있었지만, 거기엔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권고적 내용만 있었다. 장애인들의 지속적 요구로 마침내 제정된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 법무부, 법원 등 국가기관을 통한 실제적인 권리 구제 수단을 제공했다. 김 변호사도 이 법을 이용해 뇌병변 장애인이 특수교사가 될 수 있도록 했고, 장애인의 놀이기구 탑승을 제한한 에버랜드 운영 규정을 고치기도 했다.
보람도 있지만 한계도 보였다. 돈 안 되는 소송이다 보니 김 변호사처럼 뜻 있는 시민단체 소속 변호사 이외엔 나서는 변호사가 없다. 그러다 보니 2008년 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차별 구제 소송은 20여건, 구제 요구가 일부라도 받아들여진 건 7건에 그친다. 김 변호사는 그래서 미국식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거나 국가가 장애인을 대리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소송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의 판결만큼 가장 파급력이 강한 게 없어요. 법정에 차별 주체를 불러내 치열한 공방을 벌여 잘잘못을 따질 수 있으니까요. 손해배상 같은 구체적 성과도 있을 뿐 아니라, 꼭 승소하지 못해도 소송 과정에서 조정을 거치면서 많은 잘못들이 고쳐지기도 하거든요.” 지하철역에 장애인들을 위한 화장실, 승강기가 설치되기 시작하고, 지상파 방송에 수화 통역 화면이 더 커진 것 등이 바로 그런 사례다.
김 변호사는 지금 CGV 등 대형 영화관 사업자를 상대로 시청각 장애인들의 영화관람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2017년 12월 1심에서 “자막과 음성 화면 해설도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영화관 측이 불복해 사건은 항소심 심리 중이다.
법적 다툼이란 게 지루한 과정일 법도 한데 김 변호사는 오히려 즐거운 눈치다. “항소심에서 저희가 요청했더니 이제 법원에서 ‘자막’까지 제공하더군요.” 예전엔 청각 장애인 방청객을 위해 수화통역만 지원했다. 하지만 말이 빠르고 전문용어가 많은 법정에선 수화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자막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건, 법원도 장애인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했다는 얘기다. 속기사가 받아 적은 자막을 법정에서 실시간으로 읽은 장애인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런 사소한 변화가 “장애에 적응하며 함께 사는 법”이다. 어느 날 영화를 보러 갔는데, 스크린에 자막이 뜨거나 음성 화면 해설이 뜬다면, 그 또한 함께 살아가는 일일 뿐이다. 김 변호사의 소망이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n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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